brunch

애 셋, 애국자 부모의 고민

by 봉천동잠실러

2025. 10. 9. (목)


다자녀 가정은 애국자인가?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새로 올라온 미션 없나'하며 <100인의 아빠단> 네이버 카페에 들어갔는데, 어떤 분이 태극기 게양 사진을 올리셨다. '아 맞다. 한글날'하며 아이들과 태극기 게양을 했다.


"태극기 멋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좋아하는 두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다 문득, 얼마 전 셋째 소식을 전하며 이웃 어른들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요즘 같은 시기에 셋째라니... 애국하시네요."


셋째가 생긴 이후로 주변에서 종종 듣는 말이라 '아 예..' 하며 머리를 긁고 넘어가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신기했다. '아이가 셋이면 왜 애국자인거지?'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낼 노동력을 많이 생산했다는 차가운 뉘앙스는 아니었는데... 아마 어른들도 별생각 없이 '출산율이 줄어 위기다 -> 많이 낳으면 좋은 거다'라는 의식의 흐름과 더불어 '요즘 젊은이들은 계산적이라 애를 안 낳는다'라는 생각 한 스푼이 들어간 결과물이 아닐까?


타칭 애국자가 된 이유를 깊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서, 앞으로도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애국자이기 전에, 부모로서의 고민


셋째가 태어나며 타칭 애국자가 되었지만, 사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세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 영역이다.


1. 교육


첫째는 유치원, 둘째는 어린이집, 셋째는 신생아로 어떻게 또 딱 2살 터울로 셋을 키우고 있는데, 특히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벌써부터 사교육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제 겨우 만 4살인데 하원 후 수학, 영어 학원에 가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한다. 강남이나 목동도 아니고 인천 지역인데도 이 정도이니, 여러 매체에서 소개하는 '7세 고시'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도 같다.


두 아이 하원 후 놀이터에서 2시간 정도 함께 놀며 지켜보다 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원 후 노란색 하원버스에 납치(?)되어 금방 동네가 한산해지는 것을 본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다 같이 어울려 함께 육아하던 모습도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유치원,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어느 정도 알고 지내며 친해지면 연락도 하지만 예전처럼 '동네 사람들, '동네 친구들'이라는 개념이 거의 흐릿해졌다.


선행학습이 당연시되고 그에 따라 비정상적인 경쟁이 극심화되는 것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워야 하나'라는 고민을 아내와 종종 한다 (아래는 몇 개월 전 이에 대한 고민을 쓴 글이다).



2. 의료


소아과 대기가 여전히 엄청나다.


첫째 때는 서울에 살다가 이후 인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주에도 집 앞 소아과를 다녀오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 아내와 우스갯소리로 '강원도 양양에 갔어도 벌써 도착했겠다'며 웃었는데, 소아과는 서울이나 인천이나 엄청나게 붐빈다.


2년 전 소아과에 대한 글도 썼었는데 아직 여전한 것 같다. 이건 기다리는 부모와 아이들의 문제뿐 아니라, 하루에 100명 이상의 아이들을 봐야 하는 소아과 선생님들의 진료의 질, 그리고 삶의 질 차원에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3. 직장


나만 해도 현재 사는 곳은 인천인데 직장은 잠실이다.


2년 전 인천으로 이사를 오며 인근으로 이직하려고 알아보기도 했고, 마침 자리가 난 곳도 있어 지원을 해볼까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괜찮은 직장'은 모두 서울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둘째를 낳고 일을 그만둔 아내가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대부분의 직장이 서울에 있는 상황이라 난감하다.


결국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주변 맞벌이 부부들은 조부모님의 도움을 빌리거나, 유치원 이상 아이들의 경우 강제로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뜰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부모와 지내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과 가정 양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이 직장의 서울 밀집 문제는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으면


사실 교육, 의료, 직장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고, 모두 복잡하게 엮여 있는 문제들이라 딱 잘라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애를 셋이나 낳아 키우는 타칭(?) 애국자이자 세 아이의 부모로서 실제로 문제점을 체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정부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민간 기업, 의료계, 교육계뿐 아니라 나와 같은 학부모들이 함께 문제의식과 공감대를 가지고 함께 변화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사교육에 대해서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아내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첫째와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의료에 있어서도, 우리부터 소아과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예의를 지키고 그분들을 존중하자고 항상 아내와 이야기하고, 실제로 서울에서 이사 올 때 소아과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약소하지만 작은 선물과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드리고 오기도 했다.


비록 아직은 타칭 애국자이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세 아이가 자라날 이 나라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무엇보다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에 멋지고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하는 우리 세 아이들이 그런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애국자이기 이전에, 부모 마음이 그렇다.


그나저나 언제 키우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