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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고시 포기

GG

by 봉천동잠실러

2025. 4. 8. (화)


퇴근길에 유튜브에서 '7세 고시'에 대한 영상을 봤다.


태어나자마자 영어를 들려주다 아이가 걷자마자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미취학 시기에 미적분을 가르친다고 한다. 강남 같이 학구열이 높은 곳의 이야기인 것 같다.


각자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권리가 있을 리 없다. 각자의 철학에 의한 것인지, 경험에 의한 판단인지 아니면 막연한 비교나 불안함에 의한 것인지 내가 알 방도도 없다.


그저, 우리 딸은 그렇게 키우지 않고 있다.




첫째는 올해 국공립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서 가까워서.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 수업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시기에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믿어서였다.


첫째는 유치원에서 여러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배우는 것 같다. 어울리는 아이들도 더 자주 바뀌고, 아이들에 대한 경험도 어린이집에서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남자아이들이 많아서 벌써 불편하다).


그리고 '규율'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듯하다. 어제만 해도 저녁에 대화 중에 "유치원은 선생님이 정해주신 순서대로 하는 거야. 인사를 하고 노래를 하고 밥을 먹고 체육을 하고..."라며 노래하듯 말했다.


그 와중에 감정적으로는 많이 예민해졌다. 어린이집보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아이들도 많고 규율도 더 엄격하니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과 비교도 안 되게 다양한 모양의 스트레스를 마주한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잘 해내는 게 대견하다.


새로운 환경에 의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피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보다, 그 나이에 맞는 스트레스를 마주하고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하루 10시간 정도를 자는 첫째의 인생은 기껏해야 열몇 시간이다. 그 짧은 하루 동안 부모와도 교류하고 선생님, 친구들, 이웃 등과 교류하며 '사회'와 '가정'을 배우는 것이다.


밥을 제자리에 앉아 먹는 것. 밥 먹고 식판을 싱크대에 놓는 것. 엄마 또는 아빠한테 식사 후 감사인사 하는 것. 동생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 것.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 친구와 같이 놀 때 서로 지켜야 할 것들 등등 새로이 배우고 여러 번 반복해 익혀나갈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부모인 나와 아내에게 배우는 것들, 가정에서 배우는 많은 것들이 앞으로 이 아이들의 가치관이나 개성의 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린 이 시기에 가능한 만큼 많이 안아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 사춘기가 되면 문도 안 열어줄지 모르는데, 그전에, 팔만 벌리면 뛰어와 안기는 지금 시기에 마음껏 안아보고 싶다. 그 안김이 부디 앞으로 이 아이들이 살아가며 조금의 힘, 내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어린 날의 사랑받은 기억이 지금껏 내 삶의 내력이 되어온 것처럼.




아이만 생각해서 결정한 것도 아니다. 아빠 된 입장에서도 아이와 함께하며 배울 게 많다. 특히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매일 지켜보고 관찰하며 '내 부모님'의 마음을 훔쳐볼 때가 많다.


우리 첫째와 둘째는 성별과 나이 터울이 누나와 나랑 똑같다. 그 덕에 평생 둘째의 설움(?)을 가족들에게 외치던 내가, 첫째 딸을 키우며 누나와 부모님 마음을 조금씩 훔쳐보고 이해하게 된다. 첫째는 첫째 나름의 어려움이 있음을, 둘째는 둘째 나름의 장점이 있음을,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다른 것임을 아이들을 키우며 느리지만 묵직하게 배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칼퇴하고 뛰어가도 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3시간인데, 아이와 함께하며 '부모가 되어가는' 그리고 '부모 됨을 배워가는' 그 소중한 경험을 공부에 양보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7세 고시는 포기했지만, 우리, 나름대로 엄청 바쁘다.


지금처럼 사랑 넘치는 아이로 커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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