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엄마. 대장.
2025. 4. 7. (월)
아내가 입원 중이다.
유치원, 어린이집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15주차 임산부인 아내가 무려 폐렴에 걸린 것이다. 금요일에 아내가 진료 직후 바로 입원하며, 두 아이와 나는 각각 엄마와 아내 없는 생활에 돌입했다. 다행히 양가에서 긴급 파견이 이루어져 아내는 장모님이, 아이들은 할머니와 고모가 맡아 등하원을 담당하고 있다.
아내의 빈자리
처음엔 자신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육아휴직을 1년이나 쓰고 직장 외 모든 시간을 육아에만 쏟는, 자칭 이 시대의 육아 대디가 아닌가. 집에서도 모자라 회사에서도 아빠 육아 동호회를 만든 회장님인데.
웬걸. 아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당장 주말에 아이들 아침은 어떻게 줘야 하는지 몰라 만 3살인 첫째 딸한테 물어봐가며 간신히 주고, 결국 점심은 배달음식으로 때우다 저녁에 엄마(아이들 할머니)가 와서 그제야 제대로 차려주었다.
유치원 책가방은 요일별로 구성품도 다양하고 행사도 많아서 달력을 보면서 매일 달리 싸야 하는데, 거기다 우리 딸이 요즘 '캐치티니핑' 수저가 아니면 다녀와서 난리를 친다는 첩보까지 들었을 때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싶었다. 그 와중에 옷도 매일 골라야 한다니.
그리고 누가 등하원 쉽다고 했는가. 등원까진 그렇다 치는데, 하원 때에는 두 아이가 미사일처럼 각자 뛰어다니며 밖에서 놀자고 난리였다. 그리고 아직 유치원과 어린이집 적응기라 두 아이 모두 예민해서 쉽게 떼를 쓰고 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건강한 남자인 나도 30분이 넘으니 지쳐가는데, 임산부인 아내가 매일 이걸 어떻게 해온 것일까.
그동안 내가 집에서 해오던 것들, 아빠로서 잘한다고 내심 뿌듯해하던 것들이 3일 만에 무너져 내렸다. 씻기고 놀아주는 것? 그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나머지 가장 까다롭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은 아내가 티 내지 않고 조용히 해내고 있었다.
새로운 경험, 적응, 그리고 성장
그래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적응이 빠른 눈치다.
둘 다 밤마다 엄마를 찾으며 울긴 하지만 매일 울음이 짧아지는 걸 느낀다. 어쩌면 잠귀가 밝은 엄마와 달리 깊이 잠드는 아빠와만 자다 보니 아이들도 덩달아 둔해지는 듯하기도 하고 (너희들이 깨서 울든 말든 난 잔다). 아파서 입원한 것이긴 해도 어쨌든 아내도 몇 년 만에 아이들 없이 조용히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할수록 미안한 것이, 이렇게 닥치면 셋이서 잘만 자는데 왜 혼자 호캉스 한 번을 못 보내줬을까. 아이들이 엄마 없이 잘 수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막상 해보니 울음도 잠시 결국은 다 쿨쿨 잘만 자더라. 예전에 아내가 '하루 만이라도 조용히 자고 싶다'라고 했을 때 바로 혼자 여행이라도 가라고 선뜻 보내지 못한 게 미안하다.
하면 다 하는 것을.
끝나지 않았다
아내는 최소 7일은 입원해야 한다.
그동안 엄마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그리고 아빠까지 네 명이 엄마 한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 뒤집어 보면 이 많은 일들을 임산부인 아내가 혼자 해내고 있었던 것이 대단하고 또 미안하다. 이번에 아내가 아프며 두 번째 육아휴직, 그 시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조만간 '세 번째 아이, 두 번째 육아휴직'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