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육아모임이 성차별이라고?

사외 공식 동호회가 되다.

by 봉천동잠실러

2025. 4. 11. (금)


아빠 육아 동호회를 만들다


23년에 1년간 육아휴직 후 24년 1월에 복직을 했다. 휴직 중에 집에서 시작한 활동이 바로 브런치 글 쓰기이고, 복직 후에 회사에서 시작한 활동이 바로 '아빠 육아 동호회' 개설이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평범한 직원이자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서 1년이라는 휴직기간 동안 느낀 것들을 같은 아빠 직원들과 나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 게시판에 '동호회 소개 및 모집 공고'를 올렸다. 아마 금요일 퇴근 직전에 올리고 도망치듯 퇴근했던 기억이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10명이 모였다. 마침 서로 겹치는 부서가 거의 없어 쭈뼛대며 서로를 소개하고 어색하게 웃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음 달이면 동호회 개설 1년이 된다. 그리고 지난 1년 간 단 한 달도 빠짐없이 정기모임을 했고, 아빠 직원들과 예비 아빠 직원들이 함께 모여 많은 것을 나누고 활동을 하며 친해졌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활발히 활동한 우리 동호회는, 재미있고 역설적이게도 이제 7명이 되었다. 3명의 동호회원이 올해 육아휴직을 떠난 것이다. 1월부터 3월에 각각 1명씩 아빠 육아휴직을 떠났다. 최근 모임에서 육아휴직을 떠난 회원이 이런 말을 했다.


"여기서 육아휴직 얘기를 들으며 용기를 얻게 되었어요."


공식 동호회가 될 수 없다니


그런데 최근 조금 아쉬운 일이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 '공식 동호회 규정'을 개편하며 동호회 등록 신청을 받았는데, '아빠 육아 동호회'는 성차별 소지가 있어 공식 동호회 인정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성차별이라고 판단한 근거를 물었더니 '여자 직원은 가입할 수 없어서'라는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단순히 남자 직원들로 구성되었다고 성차별이라니..?


사실 회사 동호회 등록 및 지원은 크게 보면 회사의 '복리후생'이고, 직원들에게 복리후생을 제공함에 있어 '성을 근거로 차별'을 한다면 당연히 성차별이다. 모집 대상에 '아빠 또는 예비 아빠'로 표현한 부분이 '여자는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자는 가입할 수 없으니 무조건 성차별이다'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을 판단할 때는 여러 상황을 살펴봐야 하지 않는가? 차별적 목적을 가졌는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했고, 또 성차별적 효과가 발생했는지 말이다.


그런데 아빠 육아 동호회는 목적이 '여자를 성을 근거로 차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이자 남편들이 육아 관련 고민을 나눌 창구가 일반적으로 없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기에 성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아빠가 육아에 더 진심으로 깊이 고민하고 행동해서 부부간, 부모 간 육아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아빠 육아 동호회의 효과는 오히려 성평등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동호회에서 배운 여러 경험을 실제 육아에서 사용하고, 아내와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동호회는 회원 아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얼마 전 사내 어린이집 행사에서 만난 한 분은 '아빠들끼리 여행 언제 가요?'라고 항의 아닌 독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동호회의 규정 측면에서 봐도 '엄마 육아 동호회' 개설이 금지되지 않고, 외 '엄마&아빠 육아 동호회' 등 다른 구성의 동호회 개설이 가능한 상황에서 '아빠 육아 동호회'에 대한 공식 동호회 등록이 어떻게 성차별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비공식 동호회


회원들과 여러 고민 끝에 결국 공식 동호회에 록하지 않고 사적 모임으로 남기로 했다.


사실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당연히 '성차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또 이걸 들고 인사팀에 가서 '이건 성차별이 아니다'라고 설득하고 다른 절차들을 밟을 자신이 없다. 어쩌면 사적 모임으로 남는 것이 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쓰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공식 동호회는 아니지만 우리는 사비로(?) 계속 모임을 가지고 있다. 회사 차원의 지원이 없으니 사비로 모이면서 우리가 지원받을 수 있는 외부 지자체나 정부 정책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회사에서 공식 동호회가 아닌 것이지 우리끼리는 공식이니 말이다.


사외 공식 동호회 정도 되려나.


24년 여름, 수줍었던 첫 모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