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도 알 건 알자
2025. 4. 18. (금)
아내의 빈자리
최근 아내가 폐렴으로 일주일 입원하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도 나름 퇴근 후에 육아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결국 아내가 하고 있는 육아를 '도와주는 정도'였다는 것.
빨래를 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정리하는 것 등은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혼자 살아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지 않은가. 실제 육아를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유치원 공지와 어린이집 공지를 머릿속에 넣고, 각기 다른 두 선생님의 공지와 의견들이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에 행사는 뭐가 그리 많고, 행사마다 준비물은 얼마나 다양한지. 학부모 상담부터 각 원의 일정이 머릿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모든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게 육아였다.
그것뿐인가? 아이들마다 다른 취향이나 성향도 몰랐다. 우리 첫째는 누가 딸 아니랄까 봐 수저와 포크가 '하츄핑'이 아니면 마음이 어렵단다. 하츄핑 포크를 씻다가 '꿀떡아. 내일은 다른 포크 가져갈까?' 했더니 가만히 고민하더니 '아니. 난 하츄핑 포크로 먹고 싶어'라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아내는 이 화남을 그동안 어찌 참아 왔단 말인가'하며 다시금 나의 무관심을 회개(?)하곤 했다. 둘째는 아들이라 괜찮다고? 둘째는 번개맨 옷을 입고 가겠다고 매일 아침마다 전쟁이었고 결국 번개맨 옷을 입고 등원했다.
누가 등하원은 쉽다고 했는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아빠 달력 업데이트
아내가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날,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입원이 감사하다'라고 했다. 이번에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아내가 해오던 것들을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나도 무의식 중에 '등하원은 그래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라는 생각을 해왔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번에 일주일 동안 아내 없이 생활하며 두 번째 육아휴직을 조금 일찍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셋째를 임신 중인 아내가 지금보다 배가 더 불러오면 아마 이 두 악동(?)들의 등하원을 혼자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다. 직접 해보니 하원 후 아이들이 순순히 집에 돌아오지 않고 꼭 놀다 들어가겠다고 생떼를 부린다. 신체 건강한 남성인 나도 한 30분 지나면 진이 빠지는데, 배가 부른 아내가 이걸 계속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내 달력에는 새로운 보라색 알림들이 추가되었다. 바로 아이들의 일정이다. 물론 나는 출근을 일찍 하고 퇴근이 늦어서 아이들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일정을 직접 챙기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젠 의식적으로 알림 들을 보고 아내와 발을 맞추려 한다. 직장을 다니는 부(副) 양육자라고 해서 아이들의 일정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게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직접 챙기진 못해도 머릿속에는 그 일정을 가지고 있어야 적어도 아내와 '같은 결의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육아, 직접 해보기 전엔 여전히 모를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