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치열하게 육아했던 기억
2026. 2. 18. (수)
복직일이 다가온다.
복직일이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막상 두 번째 복직이 다가오니 기분이 묘하다. '잘 복직할 수 있을까'로 시작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지난번에도 잘 적응했다'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덮이는 기분이랄까? 나름 두 번째 복직인데도 은근히 불안한 것을 보면 역시 직장인에게 휴직이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불안함은 직장에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보다, 애 셋을 혼자 봐야 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내가 나 없이 새로운 육아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 더 클 것이다. 두 살 터울인 세 아이를 혼자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항상 '넉넉히 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본인도 잘 알 것이다.
물론 복직을 하더라도, 나는 회사에서 계속 육아를 할 것이다. 회사에서 무슨 육아냐고? 어색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작년에도 회사에서 육아를 했었다.
출장을 거부하다.
"오늘 당장 항공편 알아보고 바로 출발하세요."
부사장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사건은 이랬다.
해외 법인이 있는 남미의 A국에서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우후죽순 달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오해려니 하고 넘어갔던 일이 주요 매체로 번지며 일이 커졌다. 서둘러 본사와 해외 법인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는 업무를 내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오해가 맞았다. 그런데도 기사가 확산되더니 심지어는 현지 지역 의회에서도 언급이 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부랴부랴 현지 로펌을 선정하고 법인장과 실시간 논의를 하며 대응 전략을 짜기 시작했는데, 남미의 특성인 건지 현지 대응이 매우 느리고 답답했다. 원래 내가 그룹장님에게 보고를 하면 그룹장님이 부사장님께 보고를 하고, 부사장님이 사장님께 보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보고 체계인데, 사안이 워낙 급박하니 실무급인 내가 사장님께 직접 보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결국 '사실관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담당자가 직접 현지로 가서 깔끔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출장이야 문제가 없는데, 복귀일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게 걸렸다. '다 해결될 때까지'가 기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 한 달은 걸릴 일정이었다. 당시는 2월이었고 아내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내가 출장을 가면 그 기간 동안 임신 중인 아내가 혼자 두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통상 3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면 아이들이 자주 아픈데 임산부인 아내가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선뜻 출장을 갈 엄두가 안 났다.
"제가 한국에서 현지 시간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결국 출장을 가라는 부사장님 지시를 거부(?)하고 4월까지 현지 시간에 맞춰 야근을 했다. 솔직히 돌아보면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바빠 새벽에 퇴근하게 될 때는 회사 앞 모텔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해 일하곤 했으니... 일찍 퇴근하는 날에도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2~3시간 시간을 보낸 뒤 재우고 나와 방에서 새벽 3시까지 미팅을 했다. 그리고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극악의 일정이었다. 평소에 내 입장을 잘 봐주시던 그룹장도 "이럴 바에 그냥 한 번 다녀와요..."라고 걱정 어린 말씀을 해주시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만 남기고 출장을 가긴 어려웠다 (아내는 당시 건강도 좋지 않았다).
정말 이를 악물고 일했다. '출장을 안 가서 일에 차질이 생겼다'는 말이 조금도 나오지 않도록, 메신저에 항상 초록불을 띄워놓고 한 손엔 핸드폰 눈앞에는 컴퓨터를 놓고 정말 미친 듯이 일한 것 같다. 처음엔 '아니 출장 가면 일비도 나오고 좋은 경험도 쌓는 건데 왜 안 가냐'며 답답해하시던 부사장님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5분 안에 답장이 나오는 나의 독기(?)에 감탄하시며 인사팀에 '왜 집에서 일했는데 재택이라고 야근 수당을 안 주냐'며 대신 싸워주시기도 하고, 그냥 야근 수당 결재를 올리면 본인이 책임져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물론 결재를 올리진 않았다). 모텔에서 자는 날이면 다음 날 쓱 10만원씩 현금을 주시기도 하셨다. 표현은 안 하셨지만 내심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렇게 일했나 싶긴 하고, 향후 평가나 고과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것들보다 아내 걱정이 컸다.
육아는 마음가짐이다.
다행히 위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고, 덕분에 휴직 전 상반기 고과도 좋게 받았다. 주간 보고 때마다 '네가 안 가서 해결이 안 되는 거다'라고 질타하시던 부사장님도 잘 해결되고 나서는 '잘했다'는 말 외에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힘들었지만 덕분에 두 달여 동안 아이들과 매일 몇 시간이라도 놀고 양치시키기, 재우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집 안'이 치열한 육아의 현장이었던 만큼, '직장' 또한 치열한 육아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육아는 단순히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가정주부든 직장인이든 '육아를 한다' 혹은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복직을 하고 나면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만 육아를 하도록 놔두진 않을 것이다. 나도 회사에서 열심히 육아를 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모양의 육아를 하게 되겠지. 조금 막막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내와 내가 잘 해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