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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Mar 26. 2023

육아휴직 후 세 달이 지났다

사람답게 육아하려면 최소한 어른 두 명이 필요하다

2023. 3. 26. (일)


아빠 육아휴직을 한 지 3달이 지났다.


지난 3개월 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째 아이와 아내가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들이 무사히 태어났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시작해서 벌써 3주째 네 가족이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두 아이를 모두 재우고 자정이 넘어서야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최근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의 심리상태에는 조금 지각변동(?)이 있긴 했지만, 둘째가 태어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첫째도 둘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림과 동요에 둘째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다행이긴 한데 아직은 예민한 시기라서 방심하지 않고 첫째를 많이 안아주고 있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3개월이라는 휴직 기간 동안 육아를 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1. 육아는 사람이 최소한 두 명은 있어야 '사람답게' 할 수 있다.

 

말 그대로다. 육아는 사람이 최소한 두 명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가 두 명인가 싶기도 하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의 의식주를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아이와 함께 놀고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휴직 전에는 나도 '그게 뭐 얼마나 어렵길래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나오나' 했었는데 막상 해보면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일상의 거의 대부분이 '첫 경험'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다. 이유식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 입장에서는 거의 대부분 살면서 처음 먹는 음식이고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도 다양하다. 그 이유식을 재료와 영양 배분까지 고민하면서 손수 만들거나 믿을만한 업체를 선정해서 주문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릴 때는 직접 먹여주어야 한다. 물론 아이가 조금 크면 직접 먹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 포크질이나 숟가락질도 처음이니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전쟁이 따로 없다. 다 먹고 양치하는 것? 어른들에게는 당연하지만 아이들 양치시키는 것은 매일 전쟁이다. 기저귀도 잘 차다가 어느 순간 차기 싫어하는 시기가 오고, 때가 되면 배변 훈련이라는 것도 시켜주어야 한다. 낮잠 자는 주기도 커가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데 그 주기를 잘못 맞추거나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아이가 예민해져서 밤잠도 설치게 된다. 주기적으로 예방접종도 맞아야 하고 치과 검진도 받아야 하는데, 감기에 걸리거나 습진이 생기면 소아과도 들러야 한다. 아이가 접하는 놀이나 책들도 거의 처음인 경우가 많은데, 영상 노출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함께 하고 읽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부모도 유독 우울하거나 힘든 날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그렇다. 회사의 경우 아무리 힘든 회사여도 너무 힘들면 아프다는 핑계라도 내어 연차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육아는 연차를 낼 수 없다. 부모가 아파도 아이는 '누군가'가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고 잠을 재워야 한다. 육아는 멈추지 않는 기차와도 같다. 이렇게 말하면 숨 막히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 그렇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육아의 기차는 한 번 출발하면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을 키우는 일에는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상태와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보완하며 지원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는 나름대로 역할을 나누어 아이를 보는 일과 나머지 집안일을 함께 감당하다가도, 한 명이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우거나 혹시라도 아픈 날에는 다른 사람이 마치 당직을 서는 것처럼 잠시 혼자 두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명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칼로 자르듯 서로의 업무량을 조율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고된 육아의 일상을 대화를 통해 함께 나누고 서로 격려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내가 집에 항상 있고 같이 육아를 하면서 아내가 마음이 힘들 때마다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여줄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둘째가 태어난 후 지난 한 달은 정말 힘들었다. 첫째 꿀떡이가 어린이집에 간 적이 없는 '엄마 껌딱지'이고 둘째가 '완모'(완전 모유수유) 중이기 때문에, 첫째는 첫째대로 엄마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데 둘째는 둘째대로 자주 배가 고파 엄마 젖을 자주 찾는다. 이러다 첫째가 엄마를 찾을 때 둘째가 배가 고프다고 울면 정말 난리가 난다. 첫째는 본인을 안으라고 울고 둘째는 배가 고프다고 울고.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면 정말 정신이 아득하고 멘탈이 녹아내린다. 어찌어찌 내가 첫째 아이를 달래고 아내가 둘째 아이 수유를 마치면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데, 아내와 둘이 거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멍을 때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서로의 모습을 보며 실소가 터지곤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가 귓전에 들리는 듯 한 순간들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데, 나도 아내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이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명이 애를 봐야 한 명이 밥을 차릴 수 있다.
찰떡이: 엄마..나 밥 먹기가 왜 이리 어려워요? (누나 눈치보느라 밥 먹기 어려움)


2. 부모가 둘 다 함께 있으니 아이가 말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른들의 대화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휴직을 하니 아내와 내가 집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한다. 식사를 할 때도 휴직 전에는 아내와 아이뿐이었으니 아내는 아이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휴직 후에는 아내와 내가 주로 대화를 하고 아이는 그 대화를 들으며 밥을 먹는 것이다. 또, 내가 평일에 집에 있으니 아무래도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자주 뵙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와 조부모님 간의 대화에 아이가 많이 노출이 되면서 그 말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원래 말이 많은 편이기도 해서 절대적인 대화량 자체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꿀떡이는 내가 휴직을 시작할 무렵 19개월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단어 몇 가지를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고 조합하는 것까지는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이 지난 지금, 꿀떡이는 문장으로 본인의 감정이나 원하는 바를 거의 완벽히 표현한다. 예를 들어, '아빠. 저 미끄럼틀 꿀떡이가 올라가면, 아빠가 먼저 내려가고 꿀떡이가 내려가' 라던지, '아빠는 여기 자리에 착 앉아 있고, 꿀떡이는 저기 가서 책이랑 카드 가지고 와서 아빠한테 줄 거야'라는 식의 문장을 말하곤 한다. 얼마 전 인근 육아지원센터 놀이방에서도 꿀떡이가 소꿉놀이를 하던 중 '아... 칼이랑 도마 어디 있지. 정말 답답하네. 심란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다른 아이 어머니가 들으시고 폭소를 하신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아이 할아버지가 충청도 분이시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이가 충청도 사투리도 섞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는 정말 말조심.


대화하는 AI로봇에게 말 거는 중 (로봇이 아직 아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중)


3. 생각보다 사람들이 아이와 아이 부모에게 친절하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 접한 내용들이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다 보니 '노키즈존'과 같이 아이들을 꺼리고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을까봐 지레 겁을 먹고 눈치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3개월 동안 첫째 꿀떡이와 둘이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단 한 번도 아이를 기피하거나 싫어하거나 눈치를 주신 분은 없었다. 오히려 평일 낮에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 타면 어르신들이 먼저 자리도 비켜주시고 '아이 예쁘다', '아이가 몇 살이냐'며 인사해주시곤 했다. 길거리를 걷거나 인근 마트에 가도 아이와 함께 있으면 다들 아이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해 주시거나 가끔 사탕과 같은 간식을 주시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정말 부지런히 여행도 다니고 병원(?)도 다니고 나들이도 가고 산책도 다닌 편인데 정말 단 한 번도 '아이가 있기 때문에' 눈초리를 받은 적은 없었다. 초반에는 지레 겁을 먹어서 아이와 버스를 탈 때도 뭔가 주눅 드는 기분이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근거 없이 의기양양해진 것이 재미있는 변화인 듯하다. 꿀떡이도 그런 의기양양한 기분인 건지 요즘 버스만 타면 사람이 내릴 때마다 '안녕히 가세요'를 외치는 통에 매번 버스에서 사람들이 킥킥대며 웃곤 한다는.


꿀떡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록색 버스 기다리는 중


4. 생각보다 아이와 놀거나 경험할 것이 많다.


처음 육아휴직을 할 때는 의욕은 앞섰지만 아이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했는데, 3개월 간 나름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낀 점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와 놀고 경험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쉽게는 '놀이터 가기'가 있다. 집 앞에 놀이터가 없더라도 인근 아파트 단지를 찾아보면 잘 되어 있는 놀이터들이 많은데 가장 쉽게 아이와 놀 수 있는 장소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육아지원센터들도 많아서 미리 예약을 하면 어지간한 키즈카페보다 더 나은 시설의 실내 놀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사비를 조금 들인다면 백화점 '문화센터 체험'도 좋은 선택지인 것 같다. 첫째 꿀떡이는 인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촉감놀이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좋아했다.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두부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놀이 자체도 좋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꿀떡이에게 또래 아이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지금은 '글렌도만'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처음엔 조금 지루해하다가 최근에는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꼭 놀이 위주가 아니더라도 아이와 '대중교통 이용하기'나 '집 베란다 함께 청소하기'와 같이 일상생활을 같이 해보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꿀떡이와 인근에 치과를 가야 하는데 치과가 주차가 어려운 곳에 있어서 부득이하게 버스를 탔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꿀떡이가 버스를 너무 좋아했다. 베란다의 경우도 나는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데 아이는 그 자체를 놀이로 생각했는지 베란다를 청소하고 나서부터는 매일 베란다에 나가서 혼자 놀다 들어오곤 한다. 놀이터에 가거나 놀이동산에 가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가 되는 것 같다.


최근에 하기 시작한 것 중 하나가 '중고거래 같이 하기'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당근마켓에서 '유아동' 코너를 살펴보곤 하는데, 만약 괜찮은 장난감이나 책이 있으면 꿀떡이에게 먼저 보여주고 반응을 본 후, 거래를 할 때 꿀떡이를 같이 데려가곤 했다. 아이 입장에서 신기한 경험이기도 하고 장난감이나 책을 가장 먼저 차에서 받아볼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외에도 '인형극 하기', '수족관/놀이공원/동물원/과학관 가기', '클레이/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동화 구연', '모래 놀이', '물놀이' 등의 다른 놀이 방법도 정말 많다. 요즘에는 유튜브나 SNS 등에서 육아나 놀이 정보를 워낙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의지를 가지고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다양하고 색다른 체험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떨어지는 나의 체력은 어쩔 수 없....



최근 1주일 사진만 모아봐도 이렇게 다양하게 놀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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