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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 1등 했어요!
by
화필
Jul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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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격스러운 날.
하원 버스 내리자마자 "엄마! 나 일등 했어!"라고 말하는데 팔불출 엄마는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다.
"와! 아! 진짜? 감격! 감격"
유치원에서 열리는 독서골든벨.
30여 권의 책을 몇 달간 미리 읽어준 덕분이었을까?
그걸 모두 머릿속에 꽉 꽉 채운 우리 채이 칭찬해!
겨우 다섯 살인 딸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낸 결과를 직접 몸으로 느끼니 첫째인 아들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뭐든 존재 자체로 감사한 딸이었는데 굳이 1등까지 안 해도 마냥 예쁜 딸이었는데 막상 골든벨을 울렸다고 하니 좋은 기분이 마구마구 퐁퐁 새어 나온다.
잘했어.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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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열 손가락 꼼지락꼼지락.
아침밥 먹으라고 밥 차려놨는데 몇 숟가락 오물거리더니 주섬주섬 숫자공부책을 꺼내온 채이다.
할머니 집에 갔다가 마트에 들르면 장난감보다는 공부책을 골라서 사 온다.
그거 한 권이면 한동안은 알아서 잘 놀기에.(노는 게 아닌가? )
문득 떠오른다.
출산 당시 수술로 태어난 늦둥이 딸은 행여 뭐하나 잘못되어 태어나진 않을지 수만 가지 걱정에 휩싸였었다.
마취가 풀리고 서서히 눈을 뜨자마자 물은 말이 "애기 손가락 발가락 다 있어?" 였으니.
너무 예쁘게 태어난 딸의 손가락에 너무나 작은 손톱이 붙어있는 것조차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숫자를 세겠다고 열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기특한 광경이지만 딸아 밥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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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아 당면이 안 익네.." 무표정으로 멍하게 중얼거린다.
주말에 장 봐온 불고기를 지지는 중이었다.
채이가 밥을 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불지도 않은 당면을 그냥 고기 위로 투하했더니 뻣뻣한 게
영 안 익는다.
지글지글 급하게 휘젓는 나무젓가락.
보글보글 졸아들어가는 국물에 집중!
그 바람에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오빠 왔쪄?"
채이의 혀 짧은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찬혁이가 휘잉 찬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중이었다.
일 년 새 키가 10센티나 컸다.
아.. 낯선 아들.
"엄마, 이거"
식탁 위에 노란 종이 한 장을 두고 방으로 쌩 들어가는 아들이다.
아악 이건 뭐야?!
'당선증? 오.. 전교 부회장~ 역시! 잘 자라고 있던 거였어.
잠시 동안의 방황과 관계의 어려움은 지나가는 바람이었던 거야.'
알아서 학교생활을 잘하는 아들이 대견 대견하다!!
고맙고 멋지다 아들.
항상 널 믿어.
그나저나 당면 진짜 안 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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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난 거야?!"
"읭..."
뇌 정지가 오는 질문을 오랜만에 들어본다.
잠깐 사이 수많은 대답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뭐라고 해야 될까.. 하는데 채이의 그다음 말.
"오빠처럼 공부도 하고 싶고, 오빠보다 더 누나 되고 싶단 말이야"
아...
그런 이유였구나.
그런 거라면..
"공부는 지금도 해도 되고, 누나는... 오빠 보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게"
ㅋㅋㅋㅋㅋㅋㅋㅋ
채이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도 나는 까던 귤에 집중한다.
사실 더 좋은 대답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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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이~밥 먹어~~"
코로나 확진자 소식이 많아지면 당연히 유치원을 안 가는 채이다.
언제든 쉴 수 있는 채이.
집에서 일하는 엄마라 다행인 건가.
아들도 방학인데 삼식이가 늘었다.
신나게 토끼 인형과 랩을 하던 채이가 밥상 앞에 앉아서 한 술을 뜨며 하는 말.
"아이 맛없어"
"헉!!!"
내 눈이 동그래진다.
저 작고 귀여운 입에서 저게 뭔 소리인고...
내 표정을 쓱 보던 채이는
"히히 웃자고 한 소리야. 하하하 음 맛있어"라고 한다.
몇 초 안에 심히 농락당한 기분이다....
저 '웃자고 하는 소리'는
남편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하나도 안 웃긴데 본인만 웃자고 하는 말.
어휴. 남편아!
다 따라 하는 채이를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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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필의 브런치입니다. 육아하며 캘리그라피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화필의 육아일기는 간단하고 맛있는 브런치 같은 그림과 글입니다. 가볍게 공감하고 순간을 즐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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