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일상 #일기 #에세이 #글 #수필 #단문

by 공영

1. 잘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틀 쉬는 휴무에 월차까지 더해 기분은 마치 휴가를 받은 듯 신났다. 휴일 첫날, 느지막이 눈을 떠 내 팔에 안겨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출근 안 해서 좋아?" 이제 갓 말문이 트여 늦게 말을 조금씩 하는 아이는 베시시 웃으며 얼굴을 비빈 뒤 어눌한 발음으로 "조오아"라고 대답을 했다.


2. 모든 걸 다 하고 살았지만 모든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잠시 미뤄야 할 때가 있고, 욕심이 나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이기적이게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요즈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0.꿈도 꾸지 않는다. 더는 꿈에 나오지도 않고, 그저 그때의 시간들이 미련으로 뭉쳐 종종 등장할 뿐, 너는 더는 내 꿈에 등장하지 않는다.


3.찰나의 생각들로 마음을 다르게 먹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나를 접기가 쉽지가 않다.


-1. 이름을 들어도, 문득 지난 물건과 스쳐도 요동치지 않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정신차리지 못했던 흐르는 내 피들이었다. 더는 네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워 할 뿐이었다. 이렇게 지난 시간들이 내게서 멀어지는구나.


4.어떠한 것도 요즘의 나를 흔들리게 하지 못한다. 때론 흔들리는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정신을 차린다. 열심히 살아야지.


5. 외할머니가, 그러니까 나의 엄마가 내게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치면 내 아들을 할머니에게 달려가 화를 낸다. 내가 잘못을 했던, 엄마가 장난을 쳤던 그 아이에겐 중요하지 않다. 늘 달려가 할머니에게 뭐라고 소리를 친다. 이 아이가 이렇게 나를 지켜준다.


6. 쫄보가 불 꺼진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이 아이는 내가 "엄마 무서워 손잡아주세요."라고 말하면 손을 꼭 잡아준다.


7.그래서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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