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라(12)
창업 이후 직원을 새로 채용하는 회사나 일반 중소기업에서 다소 생소한 용어가 바로 '업무분장'일 것입니다. 요즘 스타트업에선 'R&R'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긴 하죠. 어떤 직원은 'R&R'이라고 하니 '락앤락'이라는 밀폐용기 만드는 회사인지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국내외 대기업들은 조직이나 직원의 업무 역할과 책임에 대해 규정해 놓은 '업무분장 규정'이나 'R&R(Role and Respon- sibilities : 역할과 책임)'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고 평가를 하며, 신규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간 이동도 가능하게 됩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각 직위나 직책에 대한 업무 분장이나 R&R이 공유되므로 자신이 상위 직위로 가기 위해 어떤 경험이나 능력이 필요한지도 알게 됩니다.
모든 조직이나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알고 업무를 하는 것이죠. 이렇게 조직이나 직원들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회사의 체계화, 즉 시스템화로 가는 첫 단계입니다. 그만큼 '업무분장'과 'R&R'이 중 합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업무분장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정확히 구분하고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창업 이후 급한 업무 위주로 사람을 뽑고 일도 이것저것 다 하기 때문이죠.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직원이 일당백을 하길 원합니다. 반면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만 하려 하죠. 이와 같은 생각의 차이가 서로 간의 마찰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회사들은 회사의 규모가 커져도 각 팀의 역할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서로 떠밀기 일쑤이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타 팀으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쁩니다.
사장 입장에서 보면 회사는 커졌는데 내부적으로 서로 협조도 안 되고 삐걱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직원들도 자신의 역할을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기존에 해왔던 일들이 자신의 업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일에 하나의 일이 추가되면 대 놓고 말은 못 하고 입이 모니터 앞까지 나옵니다.
간혹 “이 일은 제 일이 아닌데요.”하는 직원이 있으면 팀장도 뭔가 설득할 거리가 없습니다. “무조건 해!”라고 윽박지르던가 차라리 본인이 업무를 해버리죠. 이 직원은 다른 팀의 업무협조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요?
첫째, 예전의 업무 방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업 초기에는 일이 생기면 닥치는 대로 처리합니다. 열정이 넘칠 때라 업무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보다 급한 일부터 처리합니다. 새로 뽑은 직원도 자신이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죠. 팀장이 시키는 일이 곧 자신의 일인 것이죠. 회사가 커지고 직원들이 많아지면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 조직이 커지면서 각 팀이나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명확한 역할과 책임 범위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직도만 그려서 배포하면 업무가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팀 명을 짓는 데만 고심하는데 그 팀 명에 해야 할 역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직을 만들 때 창업 공신들이 자신의 경력이나 전공과는 무관한 팀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로운 조직이 생겼는데 팀장이나 팀원들도 자기들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경력직원을 팀장으로 뽑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마다 팀의 역할이 조금씩 다릅니다. 전에 다녔던 회사의 팀에 비해 새로운 회사의 팀에서는 그 역할이 축소되어 있거나 아니면 엄청 많은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불합리한 점을 건의해도 다른 팀의 업무를 빼앗아 오거나 현재의 과다한 업무를 넘겨주기가 어렵습니다. 무리한 업무 조정은 불란의 소지가 됩니다.
중소기업에서는 팀장의 성향에 따라 팀의 색깔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조정에 불만을 품은 팀장은 다른 팀을 배척하게 되고 업무 협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죠. 팀장이 그러하면 그 팀의 직원들이 다른 팀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장이 업무분장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창업 초기 회사는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사장은 급하면 업무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일을 시킵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도 늘어난 후에도 예전의 이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A 팀장이 맡아야 할 업무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B 팀장에게 지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못해 그 업무를 받아서 오면 그 팀은 또 난리가 납니다. 일이 많아지니 불만이 팽배하는 거죠. 그 업무를 받아온 팀장에 대해서도 뒷담화를 하게 됩니다. 사람이 착한 것은 좋지만 일을 착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팀장이 있는데도 직원을 직접 불러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업무 범위가 다른 팀장에게 일을 지시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사장이 직원에게 직접 지시하는 경우 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장은 안중에 없어지고 본인의 능력을 사장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죠. 팀장은 나중에서야 직원이 사장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팀장은 배신감과 함께 회사의 체계 없음을 한탄하게 되는 거죠.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 직원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과연 팀워크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사장은 회사 규모와 조직이 늘어나면 각 팀과 직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그냥 방치하게 되면 조직 간의 불협화음 이 사장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팀과 직원들은 안에서부터 상처가 곪아가듯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됩니다. 본인이 해왔던 일만 하려는 직원, 자신의 팀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팀장 및 직원이 나타납니다. 또한 팀 간 업무 장벽 및 비협조, 기존 인력과 외부 신규 인력의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 등의 문제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회사를 시스템화하기 위해서는 조직이나 직원들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R&R(Role and Res ponsibilities)을 정의하거나 업무분장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에 대한 필요성을 알더라도 중소기업의 특성상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현실은 이해하나 이 일은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미루게 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해서 누군가가 책상에 앉아 ‘업무분장표’를 만들어 일방적으로 배포해서도 안됩니다. 처음으로 하는 회사의 업무분장은 팀 간, 개인 간 합의와 공감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업무분장 시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같은 팀 업무, 직무라고 하더라도 규모가 큰 회사들에 비해서 하는 일이 현저히 적습니다.
예를 들어 총무업무가 50가지라고 하면 현재 회사에서는 10 가지만 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10가지를 총무업무라고 규정해 버리면 나중에 다른 업무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향후 회사와 조직이 확장되었을 때 그 직무가 어떤 역할까지 해야 하는지도 직원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팀 간 업무 조율과 직원들의 업무 재배정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조직 간, 개인 간 이기주의가 심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뒤치다꺼리 일이나 표시가 안 나는 일, 추가 업무 등은 절대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격상 분류가 애매한 업무도 있을 것입니다.
사장은 이 작업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알고 적극 지원 및 조정을 해줘야 합니다. 그냥 관리팀과 해당 팀장의 업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사장이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만 전 임직원들이 이 작업의 중요성을 알고 협조하게 됩니다.
또 소규모 중소기업에서는 너무 자세한 직무분석과 업무 분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직무분석 자체가 생소하고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와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문서화된 업무 이외의 일은 떠맡지 않으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계속해서 직무가 늘어나므로 이를 감안하기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업무분장, R&R(Role and Responsibilities : 역할과 책임) 이 회사 시스템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각 팀과 직원 들의 업무를 명확히 정의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무분석을 통해 역할과 책임을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