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네모
수박을 샀다.
네모로 썰어져 유리그릇에 가지런히 담겨있었던 빨간 조각.
언제나 여름이면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차갑고 달던 엄마의 손길이 닿은 네모 모양의 수박.
그 맛이 그리워서였다.
부엌에서 가장 커다란 칼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두꺼운 껍질을 갈랐다. 반으로 그리고 또 반으로.
언제나 냉장고에서 꺼내 먹기만 했었지. 엄마가 네모 모양으로 수박을 자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한참을 열심히 껍질을 발라내고 어설픈 네모로 썰어 유리그릇에 넣었다.
냉장고를 열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은 수박을 처음으로 직접 또각 또각 자르고 냉장고에 넣어 두고 보니 꼭 이제서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지만 전화는 하지 않았다. 갑자기 언젠가 엄마 없이도 익숙하게 수박을 또각 또각 자르고 있을 걸 생각하니 눈 두덩이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가끔은 유한하다는 게 서럽고 유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꼭 끝이 찾아온다는 것이고, 그 끝이 오면 나는 시원하고 달던 수박의 맛도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도 모조리 다 잊어버릴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