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한 줌이 꼭 필요해
매치포인트는 승패를 결정하는 마지막 한 점을 말한다. 승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한 점이고,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내줘서는 안 되는 마지막 한 점이다. 그렇다면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기의 시작과 끝은 언제일까?
현재가 무승부이긴 할까?
나는 승자도 패자도 아닌, 관람객의 입장으로 그들의 경기를 관전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넘치는 행운을 거머쥔 톰과 클로이. 행운을 놓치고 비극을 맞이한 노라와 이상할 만큼 넘치는 운으로 사람을 셋이나 죽이고도 욕망과 부를 얻은 크리스.
그 행운, 운이라는 건 우리가 흔히 종종 듣는 사주팔자나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데 명리학에 따르면 사주팔자는 한 사람의 삶에 3할 정도만 역할을 하고 나머지 7할은 ‘운’에 따라 흘러간다고 한다.
영화 후반부 네트를 넘지 못한 반지가 튕겨 나오는 장면에서 크리스가 졌구나.
마침내 벌을 받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지가 네트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 범죄가 완성되고 만다.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는 불공평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스토리와 익살스러운 전개에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톰의 여자였을 땐 말 붙이기 힘들 정도로 도도하고, 나름의 기품이 있어 보이던 노라가, 거짓말이 들통난 크리스 앞에서는 떼쓰고 악쓰는 짠한 여자의 모습으로 보였을 땐 한숨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게다가 약지도 못해서, 끝내 손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해버리는 노라가 너무 안타까웠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나쁜 놈들은 항상 운이 좋다고 한다. 언젠가 빌 게이츠도 하버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Life is no fair, Get used to it”라고 말했다. 그렇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우리는 그 불공평을 불평하지 말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
템즈강이 보이는 클로이와 크리스의 고급 아파트 거실에 걸려 있던 두 점의 그림이 떠올랐다.
왼손으로 크레파스를 잡고 대충 동그라미를 그린 것처럼 보이는 구름 두 개와 직직 그어진 나뭇가지들은 이미 망쳐버린 그림에 화풀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중간중간 칠해진 형광빛 노란색은 그나마 포인트가 되었지만 어쩐지 크리스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그린 것 같은 느낌의 이 그림이 나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상류층이 구매해 거실에 걸어둘 그림이라면, 어쨌거나 인정과 선택을 받은 것이니까.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매치포인트는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모두 갖춘다 해도 한 줌의 행운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어떤 이는 우디 앨런이 '인생? 그거 운만 있으면 되던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게 운이 있으면 좋겠네. 남은 인생에 있어서도.
나는 내가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 무사히 살아온 것도 어느 정도 행운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의 고양이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고, 어떤 물건에 주문을 걸기도 하고 운명이나 행운을 믿고 의지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 할 것이고, 세 잎 클로버만 보이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들이 축배를 들 때,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데
나는 남은 그의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지 않을지 대충 짐작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