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파마와 매립지 Feb 04. 2020

도전일기_2 마지막 자유

무파마와 매립지의 제로웨이스트 도전일기_두번째 이야기 


 매립지님이 사진을 보냈습니다.


 카톡을 열어보니 비닐 포장이 뜯어진 펜이 찍혀 있다. 

 "일일이 포장하는 건 심하지 않나요?" 

 똑같은 펜을 굳이 세 개씩이나 사면서 일단 포장부터 욕하고 보다니. 죄를 묻기도 전에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인가. 역시 고수다. 심지어 쇼핑 좀 참아보겠다는 내 앞에서 자랑이라니. 

 "그 펜 저한테 많은데. 미리 말씀하시지." 

 그렇게 필요 없는 말을 하고야 마는 나란 사람이란. 그러거나 말거나 매립지는 묘한 긍정으로 나를 녹다운시켰다. 

 "다음번엔 무파마님 집을 털어야겠어요. 역시 같이 하는 게 좋아요." 

 어쩐지 이 프로젝트, 나만 힘든 기분이다. 어째서 이토록 고통스러운 여정에 매립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 보이는 걸까. 


 본격적으로 제로 웨이스트에 뛰어들기 전에(대체 우리는 언제쯤 본격적으로 뛰어들까) 평소처럼 살기로 했다.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의식 없이 생활하고, 쓰레기 양을 기록하기로 했다. 비교 자료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랄까. 주의해야 할 점도 명확해질 터였다. 소유 목록을 정리하고 나서야 삶의 규모를 눈치챘던 것처럼.


 평소 쇼핑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매립지도 굳이 쇼핑을 하는데, 쇼핑에 환장한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인터넷 창을 켰다. 평소처럼 살자고 했지만 마지막 자유나 다름없지 않나. 물론 내가 결심을 어기고, 작심삼일을 운운하며 쇼핑을 한다고 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약간의 타박과 돌아오는 명세서만 감당하면 될 일이다. 우습게도 제 멋대로 살기 바쁜 나는 이상하리만치 규칙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당최 왜 지키나 싶은 일들을 굳이 지키곤 한다. 그렇기에 일 년 동안 쇼핑은 지독하게 나를 괴롭힐 게 틀림없다. 안(못) 해도 괴롭고, 해도 괴롭고. 남은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해 충동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충동이 그렇게 간단히 없어질 일인가. 번뇌에 시달리는 동안 일주일이 흘렀다. 평소대로 살자고 했으나 평소대로 살지 않았으니 실패라면 실패다. 나로선 쇼핑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 좋아해야 마땅하건만 괜히 씁쓸해졌다. 생활 쓰레기가 많지 않은 나로선 '쇼핑'을 하지 않으면, 일 년 동안 보여줄 성과가 없기 때문일까. 아. 나란 인간은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인간이었단 말인가. 죄책감과 더불어 회의감이 밀려왔다. 최근에 읽은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라는 책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표는 소비자들이 곧장 물건을 버리는 데 있다고 한다. 잘 쓰는 것보다 잘 버려야만 막대한 이익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과격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많이 사고 많이 버리는' 게 소비 습관을 가진 나에겐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의 팩폭이었다. 


무파마의 일주일



 택배를 시키지 않기 위해, 굳이 서점까지 갔지만 재고가 없는 바람에 결국 택배를 시키고 만 매립지와 달리 나는 택배를 시키지 않았으니 뭐라도 사겠다는 마음으로 스누피 실내화를 샀다. 출퇴근 할 때마다 보던 슬리퍼로 굳이 살 필요는 없었지만 마지막 자유를 순순히 보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투를 받지 않은 채, 상품만 손에 들고 오긴 했지만 포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큰 비닐과 종이 두 개가 나왔다. 뭐라도 사야겠다고 산 거였는데, 사고 나니 이것만 산 게 아니다. 칫솔을 바꿔야 했고, 수두룩한 원두에도 불구하고 믹스 커피가 마시고 싶다며 굳이 구입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늦은 생일 선물을 사줘야겠다는 친구에게 로션과 화장솜, 팩, 아이라이너까지 받았고, 더불어 미키마우스 컵 세트를 받았다. 나에게 왜 쓰레기를 안기는 거냐 하면서도, 이번 주는 괜찮다는 말로 한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부 필요했다고 우기기엔 화장솜을 안 쓴 지 한참이다. 심지어 일확천금을 노리며 산 로또 역시 숫자 두 개의 영광만을 남긴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오직 생활 쓰레기만 남을 거라고 여겼던 일주일이 쇼핑으로 범벅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일주일의 마지막 날, 찍어둔 사진을 정리하며 알았다. 택배 좀 안 시켰다고 우쭐될 일이 아니었구나. 또 다른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정신 바짝 차릴 사고가 생겼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가 반찬 그릇을 떨어뜨렸고, 유리는 산산조각 났다. 아작 난 유리그릇은 반찬과 뒤범벅이 되었고, 덕분에 반찬 역시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아닌 휴지에 쌓여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했다. 약간의 방심에도 쓰레기는 생성된다. 쓰레기통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매립지의 일주일

                                                                                                                                            

 반면 첫날 쇼핑을 떠났던 매립지의 쓰레기는 많지 않았다. 책 포장을 제외하면 음식 포장 비닐이 대부분이었다. 화장품 샘플 포장이 있긴 했지만, 그래 봤자 그녀의 알뜰함만 보여줄 뿐이다. 고통은 내가 받는 것 같은데, 성공은 왜 그녀가 하는 것인가. 괜한 심술에 음식물 쓰레기도 쓰레기 아니냐, 그것도 다 찍어야 되는 것 아니냐, 따져 묻기도 했다. 쓰레기는 생활 패턴뿐만 아니라 좀스러운 성격마저 드러나게 한다. 이쯤 되니 쓰레기통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쓰레기다, 싶다. 

 확연히 다른 생활 패턴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나온 쓰레기는 비닐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매립지는 가방에 지퍼백(씻어서 다 회 사용)을 넣어 다니며 재래시장을 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비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비닐이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는 정보를 읽은 적이 있다(출처는 인터넷으로 확실한 정보라고는 할 수 없다). 무분별하게 낭비되는 종이가 안타까워 쓰고 또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라고.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비닐은 일회용이다. 간편하고 깔끔한 것을 추구할수록 지구를 더럽히고 있다니. 말해봤자 입만 아픈 사실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평소처럼' '자유롭게' 지내자고 했지만, 결국 '제약' 속에 일주일을 보냈다. 유예 기간을 얻었으니 마음껏 버려보자는 심산이었건만, 한 번 결심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나 보다. 애써 쓰레기를 없애는 날로 돌아온 지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철학자 키케로는 자유는 소망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는 제약이 아닌 자유로 가는 길일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상기록_1 우리는 겁도 없이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