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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파마와 매립지 Feb 09. 2020

도전일기_3 일단 사고 봅시다.

무파마와 매립지의 제로웨이스트 도전일기_세번째 이야기

일단 사고 봅시다.

- 제로 웨이스트 샵 더 피커 방문기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덕분에 쓰레기에 둘러 쌓인 기분이다. 대화의 7할 정도는 쓰레기가 차지하고, 앨범 역시 쓰레기 사진으로 가득하다. 줄이고 또 줄이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지난번엔 제로 웨이스트 회의를 위해 찾아간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나왔다. 테이블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난 식으로 '몰래 신고할까요?' 떠들기는 했지만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온갖 회의적인 상황이 난무하지만, 애초부터 우리는 지구는커녕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매번 함께 하는 얍삽이 PD도 동참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수밖에.


 제로 웨이스트 샵에 방문하는 건 매립지의 목록 중 하나였다. 쇼핑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긴 했으나, 나 역시 궁금하긴 했다. 쇼핑을 하지 않는다 해서, 생활에 필요한 소모품까지 안 살 수도 없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는 게 아니니까. 마침 매립지는 주방세제가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제로 웨이스트 샵 '더 피커'에 방문하기로 했다.


 더 피커(the picker)는 국내 최초 제로 웨이스트 플랫폼(홈페이지 정보 참조)으로 건강한 소비가 만드는 건강한 지구를 타이틀로 한 생활 소품 가게다. 'PRECYCLE (폐기물 발생 최소화)'를 목표로 과대 포장에 익숙한 소비문화를 지양한다고 한다. 실제 유리병을 들고 가서 견과류 등 음식물을 구입할 수 있고, 종이 가방을 기부받아 재사용하고 있다.


 매장은 예상보다 작았다. 한쪽 벽면엔 담아갈 수 있는(포장이 안 된) 견과류가 있었고, 다른 벽면엔 스테인리스 도시락 통, 주방 행주 등의 주방 소품이, 또 다른 면엔 비건 비누(샴푸, 주방 비누)가 있었다. 중앙 테이블에는 구입 방법이 적힌 칠판과 저울이 있었고, 재사용되는 포장지들이 보였다. 관련 책들도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장 볼 때 채소를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크기별로 있는 것도 좋았다. 마음에 들었지만 가방에 지퍼백을 한 뭉치 씩 들고 다니며 씻어 쓰는 매립지도 안 사기에, 나 역시 내려두었다. 장보기에 어울리지 않아도, 에코백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쯤 되니 반은 성공한 기분이다. 일단 혹해서 구입한 뒤, 집에 있는 걸 처분하는 게 나다운 일이었건만. 물론 전혀 안 산 건 아니다.


(좌) 무파마 구입 목록                                                                          (우) 매립지 구입목록



 카페인 중독자답게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내려 마시는 나에겐 '커피 필터'가 주방 요주의 쓰레기다.  그렇게 100% 햄프(대마) 코튼이라는 유기농 재사용 커피 필터와 소창 행주, 그리고 소프넛 체험 키트를 구입했다. 아직 주방 세제가 많이 남아있긴 했지만, 지난번 마르쉐를 다녀온 후로 소프넛이 궁금하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대체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립지가 아니었다면 한 번쯤 사용해보려는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성능과 편의성을 따지며 기껏해야 사용량을 줄이는 정도였을 거다.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의 대체품을 기어코 찾으려는 매립지를 보고 있자니, 나 역시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갈지 살짝 무섭긴 하다만. 기어코 예상 밖의 지출을 하고만 나와는 달리 매립지는 매장 안의 모든 제품을 꼼꼼히 살피더니, 목표했던 주방 비누와 소프넛 키트만 구입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장 방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계산' 과정이다.

 '봉투'를 꺼내지도 필요하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 더없이 간편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뜯을 포장도 없고, 굳이 떼야할 택도 없었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과정이 실은 소비자에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편의를 가장한 일들이 실은 우리를 귀찮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해야만 아는 일들이 있다. 굳어 있는 머리는 행동의 한계를 남기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나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택배'를 한 번 시켜보기로 했다. 택배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테고, 어려운 접근성에 제로 웨이스트 샵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터였다. 포장 폐기물 발생을 지양하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 택배를 보낼지 알아보고 싶었다. 맹세코 인터넷 쇼핑을 향한 욕망 때문이 아니다.


 매장에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천연 수세미와 휴대용 손수건을 구입했다. 일회용 화장지 대신 빨아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수건으로 한 주머니에 4장이 들어 있다. 카페나 식당을 갈 때마다 한 장씩 쓰게 되는 티슈가 거슬린 터였다. 어쩐지 기어코 추가 구입을 한 기분이지만 다 필요한 것 아니겠나.

 상품은 작은 박스에 배송되었다. 입구는 종이테이프 하나만 붙어 있었고, 포장지 역시 얇은 종이와 스티커가 전부였다. 수세미에 택이 붙어 있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역시 종이와 실로 묶여 있었다. 휴대용 손수건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충분한 포장이었다. 작은 상품 하나에 쓰레기를 잔뜩 내어놓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나아가 포장지 하나 버리자고 새 쓰레기봉투를 펼쳐들 필요도 없었다. 환경을 위한 실천은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역시 하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제로 웨이스트 샵을 이용할 수는 없을 거다.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할뿐더러, 수세미 하나 사자고 택배를 시키는 것도 번거롭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 그 대안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기왕이면 제로 웨이스트 샵이 아닌 마트나 가게에서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나 잘 하자는 인간인 줄 알았더니,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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