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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Jun 30. 2023

여름

| 마트에 갔더니 한쪽 가득 수박이 쌓여있었다. 문득 스무 살쯤, 슈퍼마켓 캐셔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 여름, 커다란 수박을 한 덩이에 3천 원씩 주신다길래 욕심 껏 두 개 샀다. 가지고 갈 방법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어떤 오기로 양손에 수박을 들고 집에 돌아가던 길, 빗길에 미끄러져 결국에는 모두 깨 먹고 말았다. 빨갛게 드러수박 속살 위로 무심하게 내리던 장맛비와 수박물에 더럽혀진 내 티셔츠까지. 그땐 어찌나 막막하던지 빈손으로 집까지 올라가며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이후에도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할 웃픈 추억이 됐다. 어쩌자고 그렇게 무모했던 걸까. 그날, 수박 옮기기에 성공했더라면 아마도 내가 한때 슈퍼마켓 캐셔였단 사실마저 까먹고 살았을지도 모르지.


| 나는 내 친구 M을 바다에서 잃었다. 친구들과 떠난 첫여름 여행이었다. 월드컵 응원을 한 바탕 치른 그다음 해였을 것이다. 그날 함께 바다에 놀러 갔던 친구들은 모두 신발까지 잃어버렸다. 모래사장에 신발을 벗어 묻어두고 물속에 뛰어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맨발로 버스를 탔는데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후 리아의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그 해 여름 내내 그 노래를 들었다. 가사를 보며 작사가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던 걸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비하인드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 여름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여름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만나는 날이 왔다면 그는 이미 꽤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리라. 다행히 아직은 그런 사람들이 몇몇 남아있다.


| 나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 M도 작년 여름에 떠났다. 지금은 M이 없는 첫여름이다. 작년에는 폭우가 자주 내렸는데, 그때 주고받던 마지막 카톡 메시지들은 아직 남아있지만, M의 이름은 (알 수 없음)으로 변경되어 있다. 나는 이제 M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 M이 자주 가던 시장 안 반찬가게에서 오랜만에 오이소박이를 샀다. 인기가 많아서 갈 때마다 한 두 개 밖에 남아있지 않는. M이 아니었으면 나는 거기 오이소박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오이소박이 맛은 변함이 없었다.


| 여름에 혼자 강릉에 갔었다.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 바다를 보고 물회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노트북을 가져가 일도 조금 했다. 맥주도 마셨다. 새로 지은 숙소에서 기념품이라며 꽃 화분을 주었고, 가져온 그 꽃은 이제 나무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그때의 기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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