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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Jul 12. 2023

사라진 장소들

한 때 머무른 장소에 대한 단상들

| 여름이면 찾아가는 조용한 카페가 있었다. 2층 건물이었던 그 카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 바 테이블 구석 자리였다. 거기에 있으면 맞은편 건물 아래 담배 피우는 사람들, 커다란 가로수 나무 하나가 보였었다. 그렇게 좋은 뷰라고 할 수 없었지만, 완전히  가로막히지도 공개되지도 않은 그 장소에서 나는 아늑함을 느끼고는 했다.

한 번은 비가 많이 내려 한참을 내리는 비만 보고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비를 피해 달려갔고, 오토바이로 운송을 하던 아저씨가 비옷을 입고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간은 다시 텅 비어있고, 비는 내리고, 나는 또다시 무언가가 내게서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이후 몇 년 후, 그 카페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그때서야 다시 찾아갈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찾아갈 법이 없다.


| 아주 예전에 불조심이라는 주점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은 원래 횟집이었는데 큰 화재를 겪고 난 후 간판을 불조심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이제 거기에 함께 가던 사람들은 모두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십 수년 전 일이다. 이제는 완전히 타인이 되어버린 사람들과 술에 취해 웃고 울었던 때.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운 시절이었다.


| 나의 첫 작업실은 낡은 주택 건물에 있던 뒷방이었다. 첫 직장 동료이자 절친이 된 M과 함벽을 꾸미고, 낡은 책상에 락카를 뿌리고, 곰팡이를 지우며 그렇게 서너 달을 지내다 오피스텔에 있는 제대로 된 두 번째 작업실을 얻게 됐다. 우리는 그 두 개의 작업실에서 20대 중반을 보냈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한 번 이상 다녀갔다. 작업실을 정리하던 해, 우리는 서울로 떠날 결심을 했었다. 그때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걸 물어볼 M도 이제는 없다. 같은 시절을 공유한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은 영원히 남아있다. 어딘가에.


| 사진은 최근 발견한 아늑한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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