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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ug 23. 2023

혼자만의 여름 휴가

뚜벅이 여행자의 2박3일 강원도 여행

| 생각해 보면 강원도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물회다. 네 번째로 방문한 속초에서도 첫 번째 끼니로 물회를 먹었다. 물 가까이 가서는 회를 먹어야지. 혼자 회 세트를 시키기에는 비용 부담이 있으니 물회로 기분이라도 내보자. 마치 여행의 의식처럼.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먹은 물회는 여전히 맛있었다. 소면을 넣는 하이라이트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제 물회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 속초항아리물회



| 이번 여행에는 배낭 하나만 가지고 갔다. 2박 3일간 입을 옷과 노트북, 약간의 잡동사니들만으로도 34L 크기의 배낭 하나가 가득 찼다. 뚜벅이 여행자라 어깨가 짓눌리는 약간의 고통은 있었지만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좋았다. 카페 자리에 앉자마자 내 가방 뒤에 놓인 또다른 여행자의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캐리어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 여행에서 꼭 빠트리지 않는 또 다른 하나는 분위기 좋은 로컬 카페를 찾는 것이다. 이번 속초에서는 이전의 속초에서는 방문하지 않았던 카페를 찾았다. 정성스러운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장 너머 카페 사장님의 안목을 엿보는 일. 카페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 커피 맛도 어느 정도 짐작될 때가 있다. 카페 안에 진열된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니까. 이번에도 예상 그대로였다. 약 한 시간 정도 머물면서 만화책 한 권과 좋은 글귀를 모아놓은 문장수집가 책 한 권을 보았다. 여행 수첩을 꺼내 그림일기도 썼다. 언제 다시 방문할지 모르는 카페여서인지 커피 맛도 더욱 애틋했다. - 카페 루루흐



| 로컬 서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에는 총 세 군데 서점을 들렀다. 위에서부터 동아서점, 문우당서점, 북끝서점. 동아서점은 과거 첫 속초 여행 때 들렀던 곳이었다. 당시 시간도 돈도 어떤 여유없던 나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진열된 책을 스치며 아쉽게 버스를 타고 돌아갔었다. 이번에는 무거운 배낭을 소파에 잠시 내려두고 한참을 배회했다. 서점의 과거가 담긴 엽서도 사고, 눈에 띄는 산문집도 두 권이나 샀다. 여행지에서 고른 책은 여행 중에 읽는 것이 제맛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여행을 시작하는 날 서점에 들르려고 했는데 이번엔 성공했다.

둘째 날 들른 문우당 서점은 2층 독립서적 섹션이 재미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당황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무르다 나왔다. 마지막 날 들른 북끝 서점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 서점이었다. 마치 남의 거실 서가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어서 재미있었다.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음에 올까 했는데 역시 들르길 잘했다. 3곳의 서점에서 4권의 책을 샀다.



| 여행하는 내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여행지에 오면 평소보다 늘 조금씩 부지런해지기 마련이지만. 혼자이기 때문일까. 더욱더 많은 시간을 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를 보며 걸었다. 생각보다 햇볕이 강해 백사장에 들어갈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아직 아무도 없는 해변을 보니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부지런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 혼자 여행을 오면 사람보다 풍경을 찍는 횟수가 훨씬 더 많다. 늘 배경이던 풍경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들.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저 풍경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갔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 것을 기억하기 위한 여행.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차리는 여행. 분류에 따라 사진의 목적도 달라지는 것 같다.



| 처음 가보는 카페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을 때의 긴장감. 오픈런을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아침 일찍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야외 자리에 앉아봤다. 카페 시그니처라는 라테는 달콤했고 휘낭시에는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테이블이 없는 카페는 오랜만이어서 잠시 손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무릎 위 여행노트에서 잠시 머물렀다. - 카페 TACIT



| 바다가 고향인데 갈매기와 기러기를 아직도 구분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저건 갈매기일 것이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일 귀엽고 큰 녀석을 찍었다.



| 내가 어디에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알려주는 거리의 표식들. 뚜벅이 여행에서는 이런 것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혹시나 바닷물에 발 담글지 몰라 준비한 아쿠아 샌들이 무용지물이 되나 했는데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에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사소한 우연에서 찾아온다.



| 어느 지역에 가면 꼭 그걸 먹어야 된다더라. 하는 강박이 내게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전날 물회를 먹었기에 큰 미련이 없었다. 바닷가에서 먹는 수제버거는 근사한 맛. 아니, 그냥 한참 걸어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적절했다. - 천진오길



| 멀리까지 떠나왔으니 뭔가 써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가져온 접이식 키보드. 여행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 준 여행 수첩. 그리고 폭우 속에 갑자기 마시고 싶어진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비를 피해 머문 카페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 혼자 떠나왔는데, 또 혼자가 된 기분. 이건 어쩐지 좀 쓸쓸했다. 사람은 혼자이길 바라면서도 또 혼자이길 거부하는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 옥란푸딩



| 그렇다고 여행 마지막 날 지역 대표 음식을 빼먹는 건 조금 섭섭하지 않나, 싶어 들른 속초중앙시장. 오징어순대와 옥수수빵을 사들고 숙소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 더 많은 비가 쏟아졌다. 음식이 올려진 무릎 위는 뜨끈하고, 비에 젖은 어깨는 차갑고. 그 와중에 이걸 먹겠다고 기필코 여기까지 온 내가 새삼 짠하고. 그렇게 포장해 와서 먹은 오징어순대는 아는 맛이지만 맛있었고, 실컷 맞고 온 비는 이제 바라보는 비가 되어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 여행 내내 탔던 1-1번 버스. 고성에서 속초 사이로 움직일 때, 언제나 이 버스를 탔다. 버스 도착 예정 정보는 지도앱에서도 알려주지 않았중간에 버스가 오지 않아 당장 택시를 잡고 싶은 충동도 일었지만 어디로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몇 번 겪어보니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쯤 버스는 반드시 도착했다. 내가 기다리게 될,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일들도 실은 다 그런 원리가 아닐까 싶었다.



| 여행지에서는 하나쯤, 기념품을 사는 습관 혹은 버릇.... 뭐 그런 게 있다. 평상시라면 결코 사지 않을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사버린다. 이번엔 웃고 있는 고양이 인형이었다. 가방에 달고 다니는 녀석이다. 샵 관계자(직원 분인지 사장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서)분의 말씀에 따르자면 웃는 입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네팔의 공정무역 수공예품이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속초 여행 기념품으로 네팔의 고양이를 산 셈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녀석을 볼 때마다 네팔 보다는 속초를 떠올리겠지. - 동그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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