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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Sep 23. 2023

일상과 단상

| 오후에 동생과 노천카페에서 차와 커피를 마셨다.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며 뜨거운 차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스'라고 내뱉었다. 빨대를 쓰지 말자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또 받아왔다. 버릇이란 건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이니 알아차리도록 '노력'이 필요하겠다고 잠시 생각. 그러다 이내 이런 생각도 강박인가 싶었다.



| 집에서는 늘 같은 컵에 차를 마시는데 이날은 어쩐지 새로운 컵에 마시고 싶어 찬장을 열었다. 결혼할 때 엄마가 선물로 주신 컵을 오랜만에 꺼냈다. 한때는 가장 아끼던 컵. 그래서 쓰는 것도 아까워 보관만 해두었던 컵. 가장 아끼는 것을 때로는 이렇게 잊고 산다.



|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집사를 늘 한결같이 바라보는 우리 집 고양이 영심. 새로 장만한 스크래처가 몹시 마음에 드는 눈치다. 여기에 앉아있으면 작은 우리 집 전체를 관망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흑백으로 찍은 영심은 더욱 선명하게 귀엽다.



| 흑백 사진을 찍은 김에 흑백 영화를 찾아보았다. 제목만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비브르 사 비'를 이제야 보았다. '원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제목의 의미와 역설적으로 보이던 주인공 나나의 삶.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 사방이 흑백으로 보였다.



| 몇 달 만에 고량주를 마셨다. 우연히 들어간 양꼬치 집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2년쯤 전에 왔던 곳이었음을 알았다. 의도하지 않고 같은 곳을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 계절 옷 정리로 보낸 하루. 벙커 침대 아래 보관되어 있던 가을, 겨울 옷들을 꺼내기 위해 매트리스를 드러내야 했다. 내친김에 창고방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들까지 모조리 꺼내 한꺼번에 정리했다. 옷과 묵은 먼지에 비염이 발동해 정리하는 내내 재채기를 하며 새로운 계절을 체감했다. 다시 침대 아래로 들어갈 여름옷 중에는 올해 입지 않은 옷이 절반이나 되었다. 이전의 여름만큼 집 밖에 자주 나가지 않은 탓이려나. 새로운 계절엔 꺼낸 옷들을 다 입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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