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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Dec 12. 2023

혼자 카페에 가는 취미

오랜만에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카페까지 다녀왔다. 우연히 지인에게 그 카페가 좋았다는 말을 듣게 된 이후, 마음속에 메모만 해두었던 곳이다. 도착한 카페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오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카페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방과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어 한쪽 의자에 두었다. 그제야 실내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들려왔다. 처음 가는 카페의 카운터 앞은 늘 서먹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의 유튜브나 블로그까지 검색해 이미 주문할 메뉴를 계획했음에도 결국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버렸다.


두 번째 오는 카페라면 좀 더 여유롭게 나올 커피를 기다릴 테지만, 처음 오는 곳이라면 다르다. 자리에 앉아 가방 속 책을 꺼낼까, 핸드폰을 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카페 안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화가의 그림이 걸린 흰 벽. 겨울을 닮은 나뭇가지가 매달린 벽 선반. 바닥에 놓인 귀여운 조개껍데기들. 내 자리에는 파란색 테이블 보가 단정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위에 놓인 새파란 머그잔. 아메리카노만 주문하기 허전해 함께 주문한 디저트인 보늬밤도 맑은 하늘빛 접시에 담겨 나왔다.

커피의 쓴 맛, 꿀에 절인 밤의 달콤함.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커피와 디저트라고 해도, 달랐다. 이곳은 내 의지로 '굳이' 찾아온 곳이니까.


카페 <거처>에서


생각해 보면 이전의 나는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마감을 한 다음 날이면 스스로에게 보상하듯 새로운 카페를 검색해 찾아가거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 취미라면 유일한 취미였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일이 어느 순간 버겁게만 느껴졌다.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사치스럽지 않나?

지금 내 처지에 혼자 그런 데 찾아가 시간이나 죽이고 있는 것이.

올해도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한 주제에.

가서 앉아있는 게 뭐. 뭔 도움이 된다고.

요즘 커피 값은 좀 비싸?


수많은 자책감이 끊임없이 몰려올 때면 나는 외출하려던 마음마저 접어버렸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멍하니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늘었다. 그 좋아하던 산책도 '굳이'가 되었다. '굳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일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굳이' 쓰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졌었다. 가족 행사, 갑작스러운 프로젝트의 중단, 건강 악화 등의 다양한 이유를 대며 올해 하반기를 그냥 흘려보냈다. 익숙한 카페를 찾아가 습관처럼 작업하던 생활도 잠시 잊었었다. 이유는 만들면 생기는 것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죄이듯이 아파 응급실을 찾았던 어느 날 이후, 6개월 간의 예술인 심리 상담에서 내가 배운 것은 'stop'이었다.


stop. 멈춰.

스스로에게 멈추라고 이야기하자.

이미 일어난 일. 또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이제는 형체도 알아차릴 수 없는 찌꺼기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이제 그만둬도 돼!


알고 보면 쉽지만, 마음으로 그것에 대해 인지하기까지, 그리고 직접 실행하기까지는 꼬박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비로소 멈추고 난 후에야 나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 '굳이' 외출할 채비를 갖추고, 1시간 거리의 낯선 카페까지 찾아간 것은 그런 내가 이제는 정말 괜찮은 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또 어느 날은 소파 위에 그대로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이날만큼은 그럴 의지가 충분했다. '굳이' 한 일에 보람을 느낀 것이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얼마나 머물렀을까. 나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밝은 오후였고, 근처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어 한참을 걸었다. 다음에 이곳을 '굳이' 찾아온다면 길을 헤매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당당하게 마셔보지 않은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겠지. 카페 사장님께서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전보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새삼 취미생활이란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하고도 '그저' 즐거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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