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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Mar 19. 2024

카페작업자의 변주

이제는 카페에서 글만 쓰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3달째 내 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유튜브를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다. 어느새 유튜버는 내 부캐가 되었고, 영상 편집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문득 크림 가득한 아인슈페너를 앞에 두고 영상에 자막을 달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예전에는 내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있어서 '글'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본명조차 드러내기 민망해서 웹 상에 올리는 글에는 1~2개의 필명을 번갈아 사용해야 마음이 놓이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실은 내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은근한 관종이면서도 또 막상 나를 아는 건 싫은 모순이 함께 존재해 온 것이다. 


올해 초. 비록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머물렀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가족의 공기를 그때야 다시 느꼈다. 자유로웠던 내 일상은 아버지의 컨디션에 따라 흘러가고, 당시 쓰던 '무언가'에 대해 마무리 지을 여유가 더는 없을 것 같은 불길한 기분도 들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기록을 시작했다. 그건 핸드폰 카메라로 일상을 찍어두는 것이었다. 얼마나 간편한 세상인가. 수첩을 펼쳐 기록해두지 않아도 현장의 생생함을 그대로 기록해 둘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아버지께서 회복하시게 되어 나는 오랜만에 내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은 찍어둔 영상을 다시 볼 생각도 잊고 밀린 집안일과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너무 오랫동안 책상 앞을 비운 것 같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고, 그제야 찍어 온 기록들을 다시 보게 됐다.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넉넉하고 따뜻한 옹심이국, 아버지의 쾌유를 빌며 간절히 기도했던 사찰수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느 카페 안, 30년 넘게 열고 닫아 이제는 완전히 마모되어 버린 우리 베란다 미닫이 문을 고치는 남동생의 모습, 그리고 모두를 향해 달려가던 기차 안의 풍경들...


문득 그것들을 편집해 하나의 기록 뭉치로 만들고 싶어졌다.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멋 모르고 불쑥 상경해 감독 지망으로 단편영화를 찍던 시절에는 프리미어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야 영상 편집이 가능했다. 나는 당시 프리미어를 다루는 데 꽤 애를 먹었고, 결국 최종 결과물도 날려먹은 트라우마로 다시는 그런 걸 다룰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다행히 이제는 영상을 간단하게 편집할 수 있는 툴이 다수 존재한다. AI가 자막도 알아서 넣어주는 세상이니 얼마나 간편한가. 실패의 경험이지만, 과거 프리미어를 다뤄 본 희미한 기억으로 찍어온 영상을 어렵지 않게 편집할 수 있었고, 그걸 가족끼리만 공유할까 고민하다 자막을 조금 더 넣어 유튜브에 불쑥 업로드했다. 비록 5분짜리 짧은 결과물이었지만, 그게 내 영상 에세이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어느새 매일 아침이 어제와 다른 세상이 됐다. 주변에서는 챗GPT를 포털사이트 대신 사용하기도 하고, AI로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방식이 변해가고 있는 건지 모른다. 단지 새로운 노트를 찾았을 뿐이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뭔가를 기록하고 내보내는 행위만은 지속하고 싶다.



카페작업자의 영상 에세이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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