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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ug 17. 2024

어느 도파민 중독자의 고백

도파민 중독과 이별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


그간 나는 자극에 너무도 취약한 인간이었다. 영상 작가 지망생으로 지내던 2030대의 기간이 특히 심했는데,오로지 꿈에 대한 희망을 '도파민' 삼아 10년 넘는 세월을 버텼다. 가난했지만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딱히 없었다. 어찌 보면 도박과도 비슷한 삶이었다. 공모전 기간이 되면 당선될 소수의 인물이 내가 될 거라 믿고 전력을 다했다. 그러다 당선이 되지 않으면 또 다음 기회가 있으려나 생각했고, 운 좋게 작은 상이라도 받으면 역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계약금은 언제나 목돈으로 들어왔다. 그 목돈이 귀했지만, 원고를 쓰다 보면, 편성을 기다리다 보면, 끝내 그 돈은 녹아서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되는 지적과 평가, 때로는 내 글이 온전히 내가 되어 함께 비난받을 때, 무너지는 마음이 생길 때도 그게 당연한 것이라, 작가의 수순이라 받아들이며 마음의 피로감 혹은 아픔을 그냥 지나쳤다. 내 주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은 대부분 술 또는 담배,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중독이란 생각도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불렀다.


내가 살아온 거의 인생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이제 와서 부정하거나 비난하려는 마음은 없다. 어쩌면 희망이란 도파민에 중독되었던 그 시절이 내가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던 시절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모르지 않는다. 나는 그때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40대가 되고 보니 막연한 행복을 누린 그 시절에 대한 여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선은 모든 것이 따분해졌다. 희망의 기간에도 곡선이 있어서 희망과 희망 사이, 반복되는 좌절을 겪은 덕분이었다. 내가 실은 별 특별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어쩌면 희망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24시간 카페를 찾아다니며 밤을 새워 글을 쓸 만큼 신이 나지는 않는다. 이제 체력도 따라주지 않지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남들이 말하는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회사에서 주야장천 일해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 긴 시간, 그렇게 쓰는 생활만 한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삶의 이유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니, 정답은 없다. 지금은 어떤 이유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의 갈피를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든다.


두 번째, 건강이 나빠졌다. 활력이 넘칠 때 아껴 써야 할 체력을 공짜라는 이유로 허비해버렸다. 이제 와서 보니 공짜가 아니었다. 다시 회복하는데 돈이 든다. 검진 결과 내 위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몸무게도 이전보다 늘었다. 근육의 양이 줄고, 체력도 떨어졌다. 책상 위에서 버티는 시간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세 번째, 쓸데없이 허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작품에 매달릴 때 도움을 주던 도파민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무언가를 보는 것으로 옮겨갔다. 각종 쇼츠와 유튜브, SNS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것이 때로는 하루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볼 때는 내가 현실에 갖고 있는 막연함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었지만, 보고 나면 허무해졌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도파민'이란 중추신경계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이며,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전구체이다. 또한, 뇌 보상회로에서 분비되어 자극에 대한 보상을 예측하는데 작용한다고 한다. 보상회로에서 도파민 농도가 감소하면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고, 보상회로에서 도파민 민감도가 감소한다면 중독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조금씩 다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건강 검진을 위해 하루 동안 속을 비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조금씩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실행하게 됐다. 몸이란 참 신기하다. 그저 하루 단식했을 뿐인데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처럼 계획을 짜기보다 내가 일상에서 갖고 있던 나쁜 습관들을 하나 둘 줄여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그냥 나쁘다고 생각되는 건 안 하기'였다. 



내가 실행한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냥 나쁘다고 생각되는 건 안 하기'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카페인 음료 안 마시기 

2) 밤 10시 이후로 유튜브 보지 않기 

3) 단 음식 먹지 말기

4) 불만이나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바로 통화하지 않기

5)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않기

6) 과식하지 않기     

7) 이유 없이 사지 않기            


각 목록에 대한 이유와 실행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카페인 음료 안 마시기            

매일 아침과 점심 식사 이후 2잔의 커피를 마셨다. 홍차도 좋아해서 커피를 안 마실 땐 진한 홍차를 마시기도 했다. 내게는 커피와 차가 정신을 깨워주기 위한 촉매라고 생각되었고, 나는 반드시 카페인 중독일 거라 확신했다. 처음에는 하루만 커피를 마셔보지 말자고 생각했다. 끊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만 중단하는 것이었다. 하루 정도 안 마신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는 커피 외에 다양한 허브티들이 있었다. 카페인이 없는 따뜻한 차를 마시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점차 카페인을 아예 마시지 않는 날이 늘었고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 아쉬울 땐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그런 일조차 줄었다. 갈망이 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밤에 자다가 깨는 일이 줄었다.


2) 밤 10시 이후로 유튜브 보지 않기

이것이 제일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잠에서 깨어난 이후 거의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유튜브 시청 중독이 가장 심했다. 더군다나 유튜브까지 운영하고 있었기에 수시로 구독자 반응을 체크하는 일도 습관이 되었다. 한동안 유튜브를 보고 싶을 때, 종이책을 옆에 두고 그냥 펼쳐보았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장르소설로 시작해 나중에는 철학, 인문 책들도 서서히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부로 나갈 때도 손바닥만 한 핸디북 사이즈의 책을 가지고 나가면 도움이 되었다. 자기 전에 유튜브 대신 책을 읽으니 더 잠에 빨리 드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눈의 피로감이 많이 줄었다.


3) 단 음식 먹지 말기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점심 식사 시간. 그리고 식사 후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한동안 과자와 젤리를 탐닉했다.ㅋ 최근 살이 쪘던 가장 큰 이유가 디저트와 간식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남은 과자를 다 방출하거나 나누고, 식사 시간에는 식사만 해보았다. 처음에는 아쉬운 기분이 컸지만, 카페인을 줄일 때처럼 점차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요거트와 땅콩버터, 블루베리, 바나나 등을 함께 얼려 간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민트 사탕 정도는 한 번씩 먹을 때도 있다.



4) 불만이나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바로 카톡이나 통화하지 않기

나는 평소 친구들이나 가족과의 수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때로 내 감정의 찌꺼기를 타인에게 뱉어내는 것은 아닌지 찝찝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잔잔한 일상이라고 해도 기분이 상하는 순간, 마음에 상처를 입는 순간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곧바로 말로 뱉어내기 보다 일단 써보기로 해봤다. 내 가방 속에는 언제나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이 있는데 여기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써보는 것이다. 수첩이 없다면 내 개인 카톡에 써도 된다. 친구한테 말하듯이. 그러다 보면 그 일이 사실 그 정도 흥분할 일은 아니고, 그렇게 기분이 상할 일도 아니란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이 많은 말들과 안 좋은 기분을 타인에게 쏟아내지 않은 것에 안도하게 된다. 


5)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않기

생각해 보니 내가 우울감을 느낀 후부터 외출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를 계속 쓸 때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도 찾아갔었는데, 그런 일이 갑자기 구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집에만 있다 보면 하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살이 찐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걷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하루 1000보도 채우기가 힘이 든다. 시간과 시간의 간격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버린다. 바깥에 해가 떴는지, 비가 왔는지 모르고 지나는 날도 있다. 꼭 약속이 없어도, 목적이 없어도 일단 하루에 한 번은 나가 걷기로 했다. 집 근처 시장이라도 가거나 작은 카페나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목적지가 없어도 그냥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왔다. 하루에 적어도 3000보 이상은 걸어야 체력도 유지된다. 날씨가 너무 덥다면, 시원한 카페나 도서관에 다녀오면 된다. 그렇게 외출하고 난 후 시원한 물로 하는 샤워는 하루를 정리해 주고 기분도 산뜻하게 해주었다.


6) 과식하지 않기

원래도 과식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쓸데없이 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종종 있었다. ㅋ 예를 들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입이 궁금하다거나 괜스레 출출하다거나 그런 이유였다. 건강검진을 위한 하루 단식 이후, 곧바로 식사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져 한 끼를 건너 뛰고 식사를 했었다. 그러자 늘 속이 꽉 차 있다는 기분이 사라졌다. 신기했다. 그렇게 하루 한 끼 정도를 줄이고 1일 2 식을 시작했고, 흔히 간헐적 단식이라고 하는 식사 시간도 18:6으로 지켜보았다. 그 결과 부기가 빠졌고, 지금까지 2킬로 정도가 감량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데 처음 며칠에 비해 딱히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간 쓸데없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을 줄이니 하루에 허용되는 시간도 더 늘었다. 아무래도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시간이 줄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집중력이 높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위가 나빠지진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속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물론 이는 확신할 것은 아니고 좀 더 지켜봐야 할 사항이지만, 소식하는 습관에는 도움이 된 것 같다.



7) 이유 없이 사지 않기

내 폰에는 수많은 쇼핑몰 앱들이 있었다. 장 보기도 마켓 컬리나 B 마트 등을 이용해 손쉽게 보다 보니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주워 담다 보면 예상 금액보다 액수가 커지는 때도 종종 있었다. 옷이나 잡화들도 마음이 좀 우울하다 싶으면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자주 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도착할 때 즈음에는 내 마음이 달라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물건은 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막상 받고 보니 생각한 것처럼 좋지 않을 때도 많았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만큼, 사는 것도 쉬워진 세상이다. 그러니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우선 보지 않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에 깔린 쇼핑앱들부터 다 삭제했다. 간간이 편지처럼 도착하던 세일 알림도 더는 오지 않았고, 내게 진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어디선가, '살까, 말까?' 망설여지면 사지 않는 게 정답이란 말을 들은 것 같다. 정말 필요하다면 이유 없이 살 것이니까. 사지 않음으로 얻은 결과는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는 것과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게 된 것일 테다. 실은 사지도 않을 거면서 각종 쇼핑몰을 누비며 장바구니 채우기 놀이를 한 세월이 꽤 길었었다. 지금은 일단 주요 쇼핑몰들의 장바구니를 비워두었다.  장 보기를 참는 방법은 냉장고 속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마음의 허기가 클수록 사고 싶은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안 사도 이미 충분하다.



얼마 전부터 6년 가까이 쓰던 건조기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리 돌려도 빨랫감이 마르지 않았다. 이대로 건조기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기계 하단에 있던 '콘덴서 청소'에 관한 안내글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쓰던 내내 한 번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던 글이었다. 안내글을 보니 콘덴서를 주기적으로 분리해 청소해 주어야 한다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제야 콘덴서를 분리할 생각이 들었다. 과연, 열어보니 엄청난 먼지가 끼어 있었다. 먼지를 모두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콘덴서를 갈아 끼우자 이전보다 더 건조기가 잘 작동하기 시작했다. 새삼 탓만 하던 건조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바꾸는 것은 쉽다. 개선하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 도파민 중독을 벗어나는 방법도 어쩌면, 바꾸기 보다 개선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의 방법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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