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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01. 2024

길, 고양이

| 산책 중에 종종 만나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회색 털을 가진 나이 든 고양이는 느린 걸음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 엊그제, 골목 하수구 앞에 잠자듯 누워있던 녀석을 보았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회색 고양이는 영원한 잠에 빠졌다는 것을.


| 마지막으로 눈 감은 곳이 좀 더 깨끗한 곳이면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생각하다 잠시 눈을 감고 회색 고양이의 명복을 빌었다. 그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청에 신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떨어져 볼 때는 잠든 것처럼 얌전히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눈도 감지 못했다.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꽤 자주 녀석을 보았었다.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안부를 묻는 사이 정도는 되었다. 가끔 간식거리를 건넬 때, 경계가 심해 한 번도 다가온 적이 없었던 녀석은 늘 먹이를 두고 먼발치 떨어져 있어야 먹었다. 오늘이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 창밖으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수습되기 전까지라도 비를 맞지 못하도록 남편과 함께 고양이를 상자 속에 넣어주었다. 들어올린 몸은 너무나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마을 주민분이 지나가며 며칠 째 녀석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가 아닌 누군가도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니 묘하게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누구도 살릴 수 없었기에.


| 다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하수구 근처,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보며 나의 슬픔이 얼마나 이상한 것일까. 생각했다. 아직 살아있다는 이유로 동정했다.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결국 모두가 같은 길을 가게 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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