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2018 겨울
우리 가족은 태국을 여행 중이다. 방콕에서 늦은 밤 도착하여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파타야에서 네 밤을 지낸 다음 오늘 다시 방콕에 왔다. 이제 여기서 세 밤을 지낸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태국은 어떤 여행자에게는 멋진 곳이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한국에서 온 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여행자에 속한다. 여기에 속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왕복 비행기 표와 숙박, 먹거리 등에 소요되는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득이다. 우리 가족은 소득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썬이 일 년 동안 노동하며 받은 임금의 일부를 여행 경비로 사용할 수 있다. 해외여행이 많이 보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임을 감안할 때 우리 가족은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누리는 셈이다. 둘째는 국가 간 화폐가치의 격차다. 한국에서 만원은 한 끼 식사 비용 정도지만 태국에서는 - 물론 식당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 하루, 그러니까 세끼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는 비용이다. 그러한 화폐가치의 격차가 한국에서 그다지 높은 수준의 소득을 누리지도 않는 우리 가족이 태국에서 - 평소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 호화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가족은 한국의 소득 위계에서 그다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태국에서 휴가를 즐길 수 있지만 태국에서 우리 가족과 비슷한 정도의 소득 위계에 있는 어느 태국 가족은 한국으로 여행 오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양국의 임금 수준과 화폐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온 우리는 '싸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태국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지만 태국에서 한국으로 온 여행자는, 그가 태국의 소득 위계에서 자리한 위치가 한국에서 우리 가족이 자리한 위치와 비슷하다면, 아마도 많은 식당에서 '비싸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이다(물론 그러한 생각은 나도 한국에서 많이 하는 생각이다). 그에 따라 그는 자신의 나라, 그러니까 태국에서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지만 태국보다 화폐가치가 높은 나라로 휴가를 떠나는 일은 제약을 받는다. 물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은 태국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여행을 가서 좋은 숙소에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겠지만 서유럽에서 같은 수준의 휴가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서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평균적인 소득 수준을 누리는 사람들은 적어도 여행 경비의 측면에서는 망설임 없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 시장에서 불균등한 흐름이 생겨난다. 적어도 각 국가에서 평균적인 소득을 누리는 이들이 북구에서 남구로 휴가를 떠나는 일은 일반적이지만, 남구에서 북구로 향하는 여행은 쉽지 않다. 전자에 속하는 이들은 화폐가치의 격차 덕분에 남구 여행지에서 호화스러운 휴가를 즐길 수 있지만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분명 불평등한 일이다. 우리에게 모두 여행할 권리가 있다면, 아니 있어야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