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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11. 2019

사람에게로만 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쓴 다소 사적인 일기

스스로 생각보다 사람을 믿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쉽사리 잘 믿으며 사람에게 의지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러한 마음이란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에 나오는 구절에서 발견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p.209

‘피조물에게서 위안을 찾지 마십시오. 수사가 되었을 때 나의 담당 수사는 그렇게 말했다. 감실 앞으로 나아가세요. 하느님께 이야기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일정부분 동의했으며 신에게 나의 존재를 의탁하고자 했다. 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에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 어느 순간에 다시 사람을 믿지 못하는구나 여길 때도 있다. 저 말들은 혹은 저 행동들은 진짜가 아닐거야 하며 먼저 판단하고 보호한다. 그러다 진심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 오히려 더 슬퍼진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일인지를 생각하다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스스로를 보며 자꾸만 복잡하게 얽히는 생각의 꼬리들이 나의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일종의 자기연민인가 싶어 떨쳐내려고 노력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의 온기가 전해져 오면 녹아버리고 마는 이기적이고도 간사한 내 마음을 비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서로를 통해 위로 받는 존재들이니까.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은 그래서 과연 무얼까.


우리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이겨내려고 혹은 희미하게 하려고 수없이 많은 담론과 이야기를 하며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 예가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취미생활, 여행 등 다양한 도피처들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결국엔,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은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로 가야만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처를 주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마음을 구하려는 노력 또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노력 또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행해져야 할 것이다.


또 다시 상처받더라도 사람에게로 가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의 존재에 대해 나의 기억 속에서 떠올려 보았다.


글을 읽다 엊그제 가까운 누군가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평정심을 잃었고 그런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는 나에게 그게 더 안 좋은거야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런 억눌린 감정들이 자꾸만 본인을 좀먹고 더 우울하게 만드는 거라며 더 표현해도 괜찮아 하곤 말끝을 잠시 다정하게 흐렸다. 그러곤 덧붙여 솔직하지 못한거라고도 했다.


어쩌면 이 말이 듣고 싶어 얘기를 꺼냈는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맞는 것 같았다. 돌아온 그 사람의 말이 진심일지 아닐지 굳이 따지지 않았으니까.


진심일거라 생각하며 위로 받는 내 모습에서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을 떠올렸다. 그런 마음이 생길 때 구해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곱씹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마음을 발견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길, 현실을 핑계로 지나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길 다짐해본다.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그 동안 흘러가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갈수록 기록하지 않고 흘려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짐을 새삼 느끼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앞으로는 더 사진과 글을 통해 기록하고, 향유해서 내 인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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