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있는 것이 곧 가치 있는 것인 세상 속에서 살아내기
“그게 너 밥 먹여주니?”
“보다 더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렴.”
위에 적힌 활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특히나 한국의 2030세대는 살면서 저런 뉘앙스의 말들을 종종 들을 것이다. 각종 자격증, 수상 경력, 인턴 하다못해 자소서를 쓰는 능력까지. 우리는 가면 갈수록 더 높은, 심화된 스펙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들 또한 수치화된 평가지 속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더 생산적인 일을 찾고 방법을 찾아 헤맨다. 종종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 등급을 매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 역시 그 평가지 속에서 백 프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복잡하고 수많은 평가지들은 당장 sns만 뒤져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20대에 꼭 해야 하는 것, 대학생이면 꼭 해야 하는 것, 취준생이라면 꼭 해야 하는 것, 20대 후반이 지나기 전에 꼭 해야 할 것 시리즈 등등 ……’
사람은 저마다의 살아온 인생과, 개성과, 성향과 생각이 제각각이기 마련인데 우리는 가면 갈수록 범주화되고, 공식화된 어떤 것에 집착하며 얽매이려 한다. 그 범주화된 공식을 벗어나면 불안해진다. 왜냐하면, 그 공식 밖은 이 사회가 흔히들 말하는 ‘비생산적’이고 ‘살아가는 데 쓸데없는 것’이며 ‘밥 먹여주지’ 않는 것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공식화되고 범주화시켜 생산성을 따지는 사회 분위기가 더 심하다고 느꼈던 이유를 말하자면, 취업시장과 관련된 측면에서 나아가 취미생활, 여가생활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oo 국가에 여행 가면 꼭 가봐야 할 리스트, oo 지역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맛집 리스트, 안 사면 후회할 쇼핑 리스트, 인싸라면 꼭 해야 할 것들 ……’
이 현상들이 단순히 유용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기에 과하다고 느꼈다. 개인의 취향과 주관을 키워 줄 취미 생활과 여가 생활조차 정말 심각하게 공식화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이 모든 것들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사회 분위기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적인 경험으로 작년에 잠시 유럽에 여행을 갔을 때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가다 다소 이국적이거나 현지 문화가 잘 느껴지는 곳들을 가는 것이 좋아한다. 초반에 설레는 마음으로 정보를 찾아보고자 인터넷과 sns를 뒤졌다. 그러다 괜히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본전 뽑을 만한’ 여행지 코스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를 찾으려고, 나를 위해 떠나는 여행인데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 전시를 관람할 때도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다. 원래도 친구들과 전시를 감상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인가 ‘사진 맛 집’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사진을 찍으면 일명 ‘인생 샷’이 나오는 전시들의 목록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단순한 사진을 남기는 것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전시를 보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이 또한 생산성을 따지는 듯하다.) 전시 관람보다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주가 되는 관람 문화가 과연 좋은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와 관련해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했던 곳의 단골손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본인 직업과는 별개로 오직 취미로만 철학과 문학을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손님께 관련 책들을 추천받으며 대화를 하던 때였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제가 먹고사는 것에 하등 쓸데없고, 도움은 되지 않는 그런 … … 굉장히 쓸데없는 것들이에요. (웃음)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영(필자 이름) 씨도 나중에 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혹은 내 생각을 내세워야 하는 때를 분명 마주할 텐데 그때 이러한 것들에 대한 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거기서 분명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이 쓸데없는 것들에 기반해서 기준이 있는 사람은 분명 그 환경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잘 살아남을 겁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말씀이라 시간이 좀 지난 지금에도 거의 그 손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 이 사회가 말하는 ‘쓸데없고’, 하지 않아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는’, ‘생산성이 없는’ 그런 것들은 정말 당장 효율성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단골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나의 가치관과 주관과 성향을 만들어 줄 것이며 곧 나만의 진짜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거창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진정 필요할 때 나를 진정한 나로 살 수 있게 하는, 어쩌면 구원자적인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때 정말 효율성과 생산성만 따지면서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적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인생은 함수가 아니니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마침 좋은 기회로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를 알게 되었다. 멋있는 제목의 전시라 생각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적인 가치를 따지는 이 시대에 당당하게 전시의 본질을 알리는 제목,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는 그래서 더 가고 싶어졌다.
약 450평 공간에서 진행되는 서울미술관 2019년 첫 번째 대형 그룹 기획전으로 열리는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는 ‘생활의 발견’을 기반으로 하여 일상 속 예술 현상 탐구하고자 하는 의의를 지녔다.
바쁜 현대인의 시간 속에서 ‘예술’ 혹은 ‘전시회’는 얼마큼의 비중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올해 서울미술관은 대중들의 생활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얼마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 전시는 4개의 파트(아침, 낮, 저녁, 새벽)로 전시장을 구성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다룬 현대미술 전 분야 약 100여 점 소개한다.
관람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장을 이동하며, 현대인의 일상을 주제로 한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조각 등 현대미술 전 장르 약 1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심코 흘려보냈던 24시간 속에 우리가 어떤 예술 현상을 마주하고 있었는지, 또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예술로 재탄생 되는지 발견할 수 있다.
‘아침’파트의 전시를 잠시 들여다보자면,
‘오전 8시 10분,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소리에 지하철 플랫폼을 향한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미 스크린 도어 앞에는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이번에 오는 열차를 타지 못하면 지각이기에 비좁은 사람들 틈 사이로 열심히 몸을 욱여넣어 봅니다. 여기저기 짜증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밀고 밀리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새삼 우리나라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출근도 전에 피곤해집니다.’
에세이 형식의 친근한 설명과 함께 전시가 시작된다.
이렇게 기존의 어려운 전시 설명문에서 벗어나, 친절하고 친근하면서 동시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에세이 형식의 전시 설명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아가 여권 형식의 리플렛을 제작하거나 월간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여 티켓을 구입한 달에는 횟수 제한 없이 언제든지 재관람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특별한 전시 플랫폼으로 진행된다.
전시는 2019년 4월 3일부터 2019년 9월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국내외 작가 총 21팀이 참여한다.
생산성을, 쓸모 있는 것에 집중하는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위해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찾기 위해 서울미술관의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를 관람하는 건 어떨까.
원문 출처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