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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생각 Jul 27. 2024

당신도 차별주의자인 이유

억제된 경멸은 경멸이 아닐까?

외국인을 볼 때 '잘 사는 나라에서 왔다' 또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또한 그 출신만으로 그 사람의 직업이나 능력을 유추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느 정도 윤리를 갖추고 있고,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그 '인식' 이상의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그러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제 고민은 그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이미지들과 그 인식 자체는 문제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억제된 경멸은 경멸이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또한 편견이며 '무의식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벌어지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더 깊은 고민을 위해 우리는 특정 인종을 볼 때 스치는 생각과 감정이 왜 생기는 지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영화, TV 프로그램, 뉴스 등 미디어는 우리 외 기타 인종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나 서양사람은 잘 사는 CEO역할로,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로 나오는 것이 반복되며, 사람들은 좋든 싫든 이러한 인식을 굳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꾸 비슷한 이미지의 노출을 받으며, 우리의 뇌는 학습해 왔습니다. '아 피부가 하얀 사람사는구나?' 하고요.

실제로 우리 수많은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하고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이 고정관념과 편견을 사용합니다. 고정관념이란 우리가 야생에 살던 시절, 위험회피과 서열을 만들기 위해 형성된 것으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특정 인종뿐 아니라, 관상, 문신, 직업 등등 모든 면에서 이 방식을 대입합니다).  이렇게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면, 그 사람의 개별적인 특성과 상관없이 미리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은 본능적인 뇌의 반응입니다.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한 일개 생명체의 동물적인 반응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도치 않은 인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단순히 질 낮은 언론의 폐해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배운 역사와 실제 사회를 통해 습득한 것이기도 합니다. 질 높은 문명을 이룬 국가와 인종의 파생물들은 질 높고, 그렇지 않으면 질 낮은 현상들을 보여줄 확률이 높았을 테니까요.

동남아 이주여성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쌓인 개그우먼

다만 문제는 이것을 극복하느냐 아니냐인 듯합니다. 우리가 어디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있다, 없다(이것마저도 그 나라에 대한 편견이겠지만)"라고 말할 때 실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가지고 판단해 본다면, 그 편견에 의한 '행동 빈도가 낮을수록 차별이 없다'. '행동 빈도가 높을수록 차별적이다' 하고 할 수 있겠죠. 요즘은 이러한 행동자체에 대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민감도가 높으므로 많은 사회에서 억제되고 있습니다. 


제가 '개선'이 아닌, '억제'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인식의 개선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미디어나 세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잘 살았던 국가가 인종은 그대로 잘 살고 있고, 예전에 가난했던 국가와 인종은 마찬가지로 빈곤하고 우리가 따르고 싶은 문화를 만들지는 못 하기에, 인식이 자연스럽게 개선되었다기에는 자료가 부족합니다.

둘째, 또한 그 억제의 수준이 모두에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인종차별이 덜한 국가라고 스스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한 많은 외국인은 우리가 배타적이거나 차별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꾸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을 잘 보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두의 속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마음으로 우러나서 하는 행동인지, 잠깐 참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교육과 사회화를 완료한 성인들이 편견과 차별적인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매우 복잡합니다. 이는 단순히 공격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폭력성을 제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사회에 속해있으며, 본인 스스로를 사회화를 통해 교정하고, 사회의 심판에 의해 교정당하는 분명한 행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애초에 특정 인정과 교류조차 하지 않습니다. 일부 외지인 밀집지역에는 현지인이 잘 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볼일이 없어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냥 만나지 않고,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교류의 차단은 평화가 아니라, 벽뒤의 조용함일 뿐입니다. 이러한 분리는 교류가 시작되면, 경멸을 흘려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지만, 뒤에서는 비하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방금까지 웃으며 대화하고선 헤어지고는 "00냄새 때문에 힘들었다". "쟤네들 말투는 진짜 이상하다." 하며 없는 곳에서 모욕을 줍니다. 개인을 뭐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인종자체가 욕을 먹고 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몇몇 이들은 친절합니다. 누군가가 덜 개발된 나라에서 왔다고 인식하면 더욱 신경 쓰고, 친절을 베풉니다. 돈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물가가 부담될 거라 생각하니 더욱 잘해줍니다. 잘해주지만 동정심이 기본이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친절은 순수한 친절로 볼 수 있을지요. 당하는 상대방이 기분이 좋다면, 가볍게 생각한 의도가 좋다면 용인되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요즘 인지되고 있는 것으로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차별 대상에 대한 '미묘한 공격'이라는 뜻입니다. 정당한 의견의 무시나, 실수를 가장한 악수거절 등이 이러한 것에 해당합니다. 지난 세기 흑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는 용어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에는 사회적 약자 전반에 걸쳐 적용됩니다. 사소한 행동이라도 소수자가 모욕감을 느꼈다면 이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장면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은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다만 외국인을 자주 만날 일이 없는 사회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 보인 호의만을 근거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통제되고 억제된 차별은 여전히 차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차별은 아직 차별은 아니지만, 더 큰 차별의 시작일수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별적인 요소가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친김에 인종차별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물론 저는 갈등극복(?) 전문가는 아니기에, 실제 연구된 논문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조겠습니다.)

교육과 인식 개선: 학교에서의 교육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 세대에 있어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높여야 합니다. 지역 행사나, 만나지 않은 두려움은 만나면 깨지는 것이고, 일부로 인한 편견은 다수를 경험하게 해 주면 됩니다. 실제로 유년기 후반에 타인종에 대한 공감능력이 생기면 외부집단에 대한 긍정성이 높아지고 내부집단에 대한 편견이 낮아지며, 주변이 외부집단에 대해 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부정적 연관성이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Bommel, G., Thijs, J., & Miklikowska, M. (2020))

미디어의 역할 변화: 당연히 교육의 수단으로는 미디어가 확실할 것입니다. 다양한 미디어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공정하게 대표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디어 인물에 대한 뉴스 기사를 접하면 고정관념이 줄어들고 긍정적 조치 정책을 지지하려는 의지가 커진다고 합니다. 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다만 특정국가에 대한 안 좋은 묘사는 저널리즘과 현실반영 측면에서 적절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Ramasubramanian, S. (2015))

개인적 성찰과 행동분석:  제 개인적으로는 사실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회피, 묵인, 가식을 보이는 것이 아닌, 진짜 내면의 차별적인 심리와 무의식적인 행동을 반성해 봅니다. 이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포함할 수 있겠지요. (Matsuda, K., Garcia, Y., Catagnus, R., & Brandt, J. (2020))


이렇듯 우리는 차별을 비난하는 연습을 하고, 차별에 무뎌지기 위한 위한 노력 해야 합니다. 설명 그것이 본능에 의해 형성된 자연스러운 것이라도, 우리의 '이성'으로서 그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약육강식의 시대가 종결된 것처럼, 경멸과 차별도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내일은 아니겠지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부터 우리가 편견을 지녔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먹기에 다름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교정하는 수준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21세기 선진 시민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무의식의 실수를 없애야, 무지한 자들의 무례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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