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빠르게 부자가 될수 있었던 이유
말해보자면 잘 사는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부자나라인 '선진국'입니다. 20세기말 가난한 나라로서 좌절감, 중진국의 열등감은 온데 없고, 융성한 문화와 세계 속의 강호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두유노코리아?" 하면 "South? North?"되묻는 외국인보다, "Samsung?", "BTS?", "K-drama!"를 외치는 외국인이 더 많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가 된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짧은 기간에 정말 많이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둘러보면 다들 예전만큼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 살아보세"하는 구호가 들리지 않아서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또 다들 게으름을 피운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단지 다들 행복하거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하지 않는 청년이 50만명이 넘었다는 것도, 프리터족이 일년새 25% 늘었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10년 전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20대가 6%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할 필요없이 청년들은 툭하면 우울하고 힘이 없습니다. 이미 생계는 뭘 해도 충족이 되기 때문에 생존의욕은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것, 성장할래도 성장할 구석이 많이 보이지 많는 현실과, 이미 이룬 자들이 과하게 칭송받는 사회분위기는 분명히 우리 모두를 기죽게 합니다.
뭔가 달라져도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혹시 이전에는 있었던 동력이 지금은 없는 것 아닐까요? 사실 대한민국의 성장의 8할은 (북한과) 일본에의 열등감과 경쟁의식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해도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닐 겁니다. 1960년대부터 국가가 시행한 산업화와 경제 개발 계획은 국가가 나서 모두 나은 삶을 위해 땀 흘리게 했고, 그 중심에는 늘 "일본을 넘어서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을 밟은 죄, 둘 다 자원 없는 나라라는 공통점,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라는 죄명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기부여는 강력했습니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까마득한 차이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자극받고, 일본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 속도는 정말 가파르고, 뾰족했습니다. 또한 그 산업화의 자녀 세대 또한 그 로켓에 탄 채 더 나은 교육과 삶을 목표로 노력했습니다. 한국에서만 치고받고 하면서 이렇게 공부하면 세계 일류가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경쟁을 넘어서, 역사적 상처와 자존심 회복의 문제였습니다.
일본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성장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했습니다. 수십 년간 우리는 일본의 기술과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고, 넘어질 때마다 일본을 보며 수정해 나갔고, 스포츠에서도 일본만 마주치면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 무대에서 많은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OECD라 불리는 통계표를 늘 들고 다니며)과도 끊임없이 비교하며, 더 나은 복지 시스템, 교육 제도, 사회 구조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관음에 가까운 이러한 비교로 만든 이 성공은 지금 종착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과의 경쟁도 산업화 초기에는 작용했겠지만, 어느 시점이후로 북한이 아주 오래 워낙 죽을 쑤는 관계로 견제의 대상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상,경제,문화 모든 측면에서요.)
우리는 비교에 강하며, 열등감을 연료로 쓰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경쟁의식은 '밖'만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더 잘살자" 하던 우리의 경쟁의식은 우리 사이에도 발동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옆집과 사촌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국가만 더 잘살게, 일본만 이길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동네에서 가장 빨리 컬러 TV를 놓는 것이 자부심이고, 옆집에 있는 가스레인지가 없으면 속상해했고,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좋은 세단 자동차로 답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예전엔 사치였던 것들은 대중화되었습니다. 이 좋은 것들을 모두가 누리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좋아보이는 것들을 택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우리의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는, 남들과 구분 짓기 심리가 작용하는 측면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합니다. 좋게 보면 이는 동기부여, 자기 계발이지만, 나쁘게 보면 불안, 열등감이었습니다.
(※똑같은 민족성을 가졌으나, 국가적인 자존심만을 위해 일했던 북쪽 모습에 비하면, 개개인의 차별욕구를 제대로 선보인 능력주의, 자본주의 대한민국은 확연히 크게 이루었습니다. )
그러다 길을 잃었습니다. 국가와 개인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외부의 경쟁자인 북한은 이미 몰락하여 비교의 대상이 아닌 지 오래되었고, 일본도 활력을 잃고 추락하는 동안 우리가 이미 몇몇 분야에서 그들을 뛰어넘었습니다. 서로 활력 있는 상태에서의 경기가 아니었기에 큰 보람은 얻지 못했지만, 일단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와중에 우리가 동경하던 선진국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남았습니다.오랫동안 누굴 따라잡기만 해도 괜찮았던 우리가, 이제는 어딘가에서 리드를 해야 되는 상황이 왔습니다. 외부적과의 비교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대부분 이미 얻었기에, 국가의 보람이 우리의 보람이 되지 않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제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달릴 사람이 아주 적어졌습니다.
국가가 크게 성장하지 않으니 개인들도 고만고만한 싸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으니, 개인의 성장도 당연히 더딘 것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의 경쟁의식만 그대로입니다. 보여줄 것이 없으면 안 보여주면 그만인데, 살을 깎아 남에게 뽐낼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없는데 뽐내야 하다보니, 남자는 억지로 호캉스를 가고, 외제차를 사고, 잘 사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안달이 나있습니다. 우리의 평균소득은 저 아랜데 모두가 상류층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새로운 비전을 필요로 합니다. 과거철 경쟁과 비교로 힘을 내서는 안 됩니다. 너도 맞고 나도 맞는 주관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굳이 소형차를 사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여름에 해외로 떠나지 않아도 잘 산다고 할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차원, (철 지나간다 할지 모르지만)민족차원에서 우뚝 솟은 숫자 지표보다, 아름다운 모양을 보게 해야합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개조'는 쉽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극단의 성공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공을 경험한 자들은 다시 성공할수 있습니다. 머무르면 라떼, 극복하면 역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