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떤 게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치열합니다. '생과 사'를 걸고, '모 아니면 도', '천국과 지옥'을 각자의 삶에서 오고 갑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성장과 성공을 향해 노력 중입니다. 정말 이것은 게임입니다. 정확히는 '뭐든 각자 하기에 따라'라는 [능력주의]와 [자본주의]RPG게임 말이죠.
오늘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RPG게임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테마 온라인게임 '거상'
*우선 롤플레잉 게임에 대해서 아시나요? 영어로는 role-playing game이라고 불리며, 대부분 RPG이라고 쉽게 부르지요. 플레이어 각자에게 할당된 캐릭터를 조작하고 운영하여 디지털의 상황에서 주어지는 미션과 퀘스트를 극복하고 레벨업등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임입니다. 그 게임에서는 모두가 열심히입니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 접속한 것이니, 만큼 모두가 사냥과 거래와 전쟁에 진심입니다. 그렇게 게임 내내 활동을 위해 얻는 보상은 자원(금, 은화)과 레벨업(경험치)입니다. 열심히 하면 게임 내에서 더욱 인정받고, 또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즐길 수 있습니다. 분명 잘 만들어진 게임은 재미있고, 우리를 흥분시킵니다. 단 보통 RPG와 다르게 대한민국 RPG는 한번 접속하면 로그아웃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단 성장하고 보는 세상
신규 오픈한 게임을 해보셨나요? 초기 게임은 거의 매일이 축제입니다. 게임 초반 접속한 플레이어들은 적은 경쟁 속에서 다양한 자원을 빠르게 얻습니다. 그 게임이 진짜 재미있는지, 대박 날 게임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의든 타의든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풍부한 초반 이벤트와 높은 보상의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물론 게임설정이 잘못되거나, 난이도가 무리하게 어렵거나, 곧 섭종 하던가 하는 이벤트가 발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운이 좋다면 대박 날 게임에서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초기 운영자는 될놈될 했고, 설정은 '확장'이라는 목표에 딱 맞았으며,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많은 유저가 초반 퀘스트를 무난하게 극복해 내며, 빠르게 레벨업을 해왔습니다. 당시 개발초 플레이어들은 적은 경쟁과 빠른 성장 속에서 많은 기회를 누렸습니다.(누군가는 애초에 운영자의 지인들이 압도적인 혜택을 누렸다고도 비난도 하고요) 물론 그때도 게임참여에 비관적이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험치 이벤트에도 시큰둥했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아이템을 많이 얻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전략을 잘못 세워 멧돼지를 사냥해야 할 시점에 도토리만 수확한 사람도 있죠. 무엇이 되었든 당시는 풍요의 시기였고, 대부분은 맘만 먹으면 빠른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이 서버는 유명해졌으며, 많은 이들이 찾아 흥했습니다. 전세계가 알아주는 Hot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성장한 탓일까요? 혹은 유저들의 욕심이 커진 탓일까요? 점차 서버의 인원은 포화되었고, 트래픽이 한계에 이르자 혜자스럽던 경험치와 아이템 이벤트가 중단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이 현상을 이미 '가진 자의 횡포'라고 했고, 누군가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포화이후 게임에 접속한 플레이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전만큼 좋은 아이템을 얻지도, 경험치를 충분히 얻지도 못했습니다. 예전엔 나무몽둥이로 노력해도 금방 구할 수 있었던 금화가, 지금은 철갑으로 때려도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렇게 번 금화는 마저 예전답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번 금화로 옷을 사고 집을 사려해도, 물건의 가격은 비쌌고, 더 비싸졌고, 비싸질 것이고, 이미 좋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내 것을 보고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문제는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호시절 시작해 좋은 아이템과 높은 레벨을 쌓은 소수의 사람들은 이 게임에 자식들과 가족들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비기너들에게 좋은 아이템과 좋은 사냥터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레벨 8짜리가 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한정판 아이템과, 99 레벨들의 사냥터에 따라가 거저로 경험치를 얻기도 했죠. 세상이 아주 쉬웠을 겁니다. 그냥 말만 하면 최상급 아이템을 얻을 수도, 맘만 먹으면 레벨을 최상위로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이는 대한민국에 실제로 존재하며, 그들에게는 생계와 불평등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최상류 층으로서 세상이라는 게임을 쉽게 플레이하는 것. 자산의 상속뿐 아니라, 경험과 몸빵의 힘 그것은 이 게임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
게임 초반에 시작한 플레이어들과 후반에 접속한 플레이어들 간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핫한 서버이니 만큼, 조금 힘든 것은 당연하다 감안하고 노력했습니다. 다들 그래야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성공은 내 능력에 비례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여러 사건들이 이 서버를 덮치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력해도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그저 한탄을 하기도 하고, 이 세상이 사기 아니냐고도 하고, 누군가는 게임룰이 망했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운영진은 그런 분위기에 놀라 부랴부랴 새로운 이벤트를 시작했지만, 그마저 초기 관계자 배불리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아쉽게도 그 소문에 운영진은 정확히 반박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 대한민국 서버에 유입되는 신규유저는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서버를 옮기지 못하는 이들만이 남아 배회하는 서버가 되었습니다.
신규가 없는 게임은 고인 물이 됩니다. 아무도 아이템을 거래하지도, 지겨운 사냥터로 가지도 않습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서 접속한 것일뿐 생계를 위해 그저 의무적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유저가 늘지 않으니 운영자들도 새로운 테마와 퀘스트를 만들지 않습니다. 유저들을 통한 수익도 줄어드니 운영비를 삭감합니다. 게임이 허술해 집니다. 유저는 더욱 불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는 두 가지 결과만 남아있습니다.
뉴비를 위한 투자
신규 유저가 접속해 봐야 아무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덮어놓고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내가 데려온 신규 유저에게 좋은 아이템을 줄수도, 경험치 많이 주는 사냥터를 소개해줄 수도 없다면, 이 게임에 애정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사실 원래는 이런 것이 없어도 되었습니다. 모두가 빈손으로 시작했으니까요. 다만 세상에 보이는 이들이 너무 많은 세습하고 자랑하는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세습이 덜 부럽고, 자랑이 의미 없을 만큼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것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서버종료
지금껏 누려온 것을 포기할 수 없고, 뉴비와 대다수로의 자본이득이 불가능하다면, 운명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낡아빠진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승자독독독독식의 구조와 마인드를 손보면 됩니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뼈를 깎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거라면 우리는 마무리를 준비하면 됩니다. 화려하게 엔딩 크레딧을 올리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늙고 병들어, 낡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힘없이 외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