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쇼펜하우어에 유독 반응하는 이유
우선 저는 쇼펜하우어를 좋아합니다. 그의 책을 볼 때 몇 번이나 무릎을 탁 치고, 정말 공감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하고 싶으면, 쇼펜하우어 읽고 와"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그의 사상을 좋아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지만,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이 현상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나만 알고픈 가수와 팬 사이의 심정이 아닙니다. 단지 그의 인기가 말하는 바를 알고, 제가 그를 왜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렇게 고민이 많았나 슬퍼진 김에, 이 유행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먼저 쇼펜하우어에 대해 짧게 말해보겠습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독일 출생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 세계의 본질을 '의지'로 보고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깊이 탐구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유명합니다. 그는 주로 삶을 회의적으로 보고,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는 아마 그의 순탄치만은 않았던 개인의 삶이 분명히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하고, 본인의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젊어서 교수가 되어 베를린 대학교에서 강의했지만 그 시기 헤겔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큰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성공한 줄 알았던 그 순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절망했던 청춘.
그는 학교나 철학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외로운 염세주의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
이런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의지'입니다. 그는 세계의 근본적인 본질이 '의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인의 의지나 의사결정과는 다릅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맹목적이고 끝없는 '욕망'과 '갈망'을 의미합니다. 이 의지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 그리고 우주의 모든 현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함께 '표상'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표상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 형성된 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를 볼 때, 우리는 그 나무를 '표상'을 통해 이해하고 인식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과 감각을 통해 형성된 세계를 쇼펜하우어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스럽게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이 닿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는 끊임없는 욕망과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잠시 동안만 만족감을 느낄 뿐, 곧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고 다시 고통이 찾아옵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보았습니다.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
-쇼펜하우어
1. 위로: 우리 대한민국은 고통으로 가득한 사회입니다. 학생들은 입시 경쟁, 직장인들은 취업 및 승진 경쟁, 모든 일반인들이 끊임없는 비교와 성취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깊은 고민을 낳게 됩니다. '삶은 왜 힘들지?' 하고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러한 고민과 불안에 대한 깊은 이해의 실마리일 뿐 아니라, 고통과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 자체만으로 우리 현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큰 위안이 되었을 겁니다.
2. 이해: 그리고 쇼펜하우어 사상이 유행하기 전부터 근 몇 년간 마음 챙김, 명상, 심리학 등 자기 성찰에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 날카로운 사회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이해와 성장을 추구해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요. 딱 이러한 시점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는 여타의 힘내라는 자기 계발서나 다 괜찮다는 심리학 책과는 다른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그냥 이 삶과 본인 자체를 이해해 보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3. 익숙함: 의외로 쇼펜하우어는 동양 철학, 특히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고통과 욕망,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동양 철학과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한국 독자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으며, 그의 사상이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 더 큰 우울감: "삶은 의미가 없으며, 어차피 고통만이 기본이다"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그의 사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우울감이나 절망감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는 행복을 위해 찾아보려는 사람들에게 행복 또한 무의미하다는 그의 생각은 이미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추천하는 입장은 아니고, 그냥 그것을 범죄라고 모는 입장을 비판하는 취지라고 합니다)
2. 자포자기: 또한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일부 사람들에게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성공과 성장은 적극성과 주체성의 위에서 태어났으나, 이는 개인의 성장과 변화의 의지마저 저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끝없는 욕망을 끊어내고, 의미 없는 것을 위한 희생을 줄이다는 점에서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3. 인정과 치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여, 개인들이 자신의 고통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허무함 만큼이나 그가 말하는 동정심에 대한 강조를 이해했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통해 모두가 고통을 느끼는 같은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의 공감대로 화목하길 바랍니다.
그의 철학은 분명한 '생의 진단'이라고 느끼면서도, 불편한 위로입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심리적 위안과 공감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비관주의와 우울감의 확산, 수동적 태도, 현실 도피 등의 부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고민하고 철학책을 골라 읽을 정도로 정도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진심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상 혹은 사실에서 파생되는 영향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내게서 몇 가지를 배웠고 그걸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