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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중립적인

가장 우주적인 오해, 네 번째

by 캉생각

지란은 테이블 위 머리통만 한 기록 장치를 휘청거리며 들어 올렸다.

그 장치에는 지란이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와 흐릿한 영상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충격적인 영상을 다시금 재생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아니 저 같은 몇몇은 외계문명을 찾기 위해 수천 년을 논쟁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의 답을 찾을 기회가 왔기에 당장이라도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이는 힘을 증명하거나 공허한 평화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모두를 둘러보았다.

“별로 신경 안 쓰셨겠지만 만약 이 신호가 우리의 창조자라면? 그들은 아직도 명확히 우리의 상태와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냥 우리의 관찰자라도 마찬가지겠지요” 말했다.


지란은 힘 있는 발성에 망설이는 말투로 이어 말했다.

“그래요. 그러나 그들이 누구이든 우리는 그들을 이길 힘도 없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하늘 위의 존재입니다"

그가 하늘을 쳐다보자,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도 화가 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혹은 차라리 평화의 제스처를 요청하는 모습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일부 원로들과 학자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과 의문이 가득했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숨지 안 돼, 중립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는 묘한 결론을 내리며 자리에 앉아버렸다.

“여기서 중립이 대체 뭡니까?”

아까도 연민이 뭐냐고 따졌던 정치가가 다시 말했다. 그러자 지란이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려는 그 순간 왕 에크샤가 위엄 있게 소리쳤다.

“알아들었다능. 중립적인 결론을 내리겠다능”


*티소론의 모든 대화는 그들의 깊은 철학적 전통을 반영한 근엄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존댓말을 씀으로써 고결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왕 에크샤는 항상 한 글자로 줄여, 간결하지만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능”을 사용했다


아무 답이 나오지 않은 것 같은 그때, 결정을 내린 왕의 입을 모두가 우러렀다.

“우리는 수만 년을 이어 살아오며, 수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논하고 잊었으나, 이번만큼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으며, 답을 우리의 힘으로 낼 수도 없을거라능.하늘의 별은 떨어지지 않아, 우리가 닿을 필요 없었지만, 이번의 사건은 미지가 우리의 눈앞에 떨어졌다능.”

그의 큼직한 얼굴에서 땀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고로 이 신호를 무시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아는 자들에게 숨는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라능. 존재를 숨기는 것은 존재가 없는 것이라능. 그들이 우리에게 접촉을 시도한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 답을 해야 할 것이니라능. 그것은… 힘도 평화도 아닌 아주 중립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능….”

잠시 후 몇 초 후에 왕이 힘주어 말했다

“그들과 똑같이 할 것이라능”


'그가 말한 똑같은 방식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말 그대로. 정말로 그들이 보낸 군무와 소리를 다시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의 직관적인 생각은 그러했다. 이번에 받은 신호가 평화로운 메시지였다면, 우리 또한 평화로운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그들이 공격적인 메시지였다면, 우리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공격적인 준비한 것으로 보일 테니, 피차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왕은 이 미지로의 초대를 피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드러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회의장은 왕의 말에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분명 그들은 그 외계 생명체들의 기괴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았고, 본인들의 늘어진 신체를 다시 훑어보았다. 흐물거리는 척추와 통통한 몸. 그들의 신체 중 빠르게 돌아가는 것은 유일하게 뇌와 입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았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은 왕의 판단을 깊이 생각하며, 각자 나름대로 철학적 명분을 다시 검토했다. 본인과 다른 의견이었을지언정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순간이 그들 문명의 미래를 결정지을 역사적 순간임을 모든 이가 깨닫고 있었다. 그 책임은 왕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생각을 일체화하여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왕의 결정이라면 늘 신뢰하고 그에 맞추어 움직였다.


우선, 티소론 지도자들은 티소론의 총 100억 인구 중 지능이 높은 1만 명을 소집했다.(다행히 이 외찾티 멤버 중 9명 중 지란을 포함한 6명이 이 멤버에 속해있었다) 정부는 모든 티소론인이 막 30세(그들로선 유년시절이다) 시행한 지능검사 자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중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포했다. 그 고등 사회에서도 고등한 1만 명은 지성인으로 분류되었다.


이들의 선택이라면 사회적으로 ‘생각 깊은 이들의 선택으로’ 이해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반백수 외계인덕후 지란이 어머니에게 쫓겨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다만 지란처럼 반백수인 경우는 특이한 경우였으며, 보통 사회에서 교수나 선생님으로 불리던 자였다. 아무튼 이 1만 명은 모두 자신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우주에 본인들을 드러낼 실행의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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