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애들을 봐줘야 한다는 소리야

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by 캉생각

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네가 애들을 하루 종일 봐줘야 한다는 소리야."

전화기 너머 누나의 목소리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내 방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목금 내내. 하루 종일?

"뭐 상관없어."

입에서 나온 말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이미 포털 검색창에 '서울 어린이'까지 타이핑하고 있었다.


일 년에 약 다섯 번.

그게 내가 조카들을 만나는 횟수다. 명절에 두 번, 가족여행에 한두 번, 그리고 누나네가 올라올 때 한 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완벽했다.

세뱃돈 쥐여주고, 거실에서 목마 태워주고, "많이 컸네" 같은 정형화된 멘트를 던지는 것. 그게 삼촌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에 대해 고민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을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한다니. 가슴이 뛰었다.


이참에 그들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초3과 유치원생. 확실히 그들은 어른이 아니다.

이 말은 그들이 미성숙하다거나 순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그들은 어른이 아니다. 모든 행동양식, 사고방식과 우선순위가 다르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처럼,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중력이 작용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패드가 있었던 세대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들에겐 사회생활이 없었다. 가식이 없었다. 그래서 관찰이 제일 쉬웠다. 나는 그들의 부모가 아니니까. 책임감도, 의무감도, 걱정도 덜했으니까. 가끔 만나는 뜀박질하는 변방의 세계. 그 정도 거리만 내게 익숙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00아, 너 다다음 주 바쁘니?"

누나의 전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서울 출장이 있을 때면 중간에 나를 불러내 밥을 먹는다. 파스타집이나 국밥집 같은 데서, 우리는 부모님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관절, 아빠의 혈압, 조카들의 학교생활. 우리는 걱정이 많다.


"응? 뭐 딱히."

"누나 이번에 출장 가. 수목금"

"밥 먹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애들을 데리고 갈까 해서."

침묵.

"음... 그래 뭐"

누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이었을까, 미안함의 한숨이었을까.

"근데 나 그때 일을 해야 해서..."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의 그 짧은 침묵, 사실 나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네가 애들을 하루 종일 봐줘야 한다는 소리야."


순간 눈앞이 번뜩했다.

놀이동산...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서 손 흔드는 조카들.

쇼핑몰... 장난감 가게 앞에서 "하나만요, 삼촌!" 하고 조르는 목소리.

엄마가 절대 사주지 않는 음료와 감자튀김.

쿨한 삼촌. 재밌는 삼촌. 기억에 남는 삼촌.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동시에 현실도 밀려왔다. 하루 종일? 화장실은? 다치면? 울면? 싸우면? 길 잃으면?

그런데도 나는 말했다.


"뭐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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