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조카들의 서울여행. 그들이 방학이라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올만했기에 온 것이다. 개근상에 목숨 걸지 않는 세상.
아니, 어쩌면 개근상이 미련함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시대. 아이들은 쿨하게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학교를 빠졌다. 그들에게 서울은 꽤 그럴싸한 체험이자 학습의 장일 테니까.
나는 나름의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물론 롯데월드나 남산타워 같은 거창한 랜드마크는 제외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큰 아이는 내 통제를 벗어났고, 작은 아이는 너무 어렸으며, 결정적으로 보호자인 내가 놀이기구를 못 탄다.
대신 나는 소확행을 노렸다. 집 근처 쉑쉑버거에서 미국 맛을 보여주고, 대형 서점의 위용을 자랑하고, 레고 매장에서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삼촌 최고!" 내 머릿속엔 이미 조카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출발 전, 누나는 은근히 김포공항 픽업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동생이 데리러 오겠지?'.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평일 근무 중이기도 했거니와, 공항과 우리 집은 픽업을 가기엔 멀고 애매한 거리였다.
"택시 타면 3만 원도 안 나와."
뱉어놓고 보니 스스로가 좀 야박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겐 이런 배려가 익숙할 텐데...' 생각했다. 매형은 운전을 사랑하고, 픽업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가장이다. 그가 나였다면? 아마 반차를 쓰고서라도 공항 게이트 앞에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형이 아니고 바빴다. 대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합리적 배려를 하기로 했다.
"공항철도 타면 금방이야. 내가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갈게."
칼퇴근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시간에 맞춰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픽업을 거절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개찰구 밖이 아니라, 굳이 승강장까지 내려가 기다리기로 했다. 열차 문이 열리고 삼촌이 "짠!" 하고 나타나는 서프라이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반가움을 연출하고 싶었다.
열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승강장에 서서, 열차 한 대를 보냈다. 다음 열차도 보냈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열차를 놓쳤나?'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00아, 우리 나왔는데 어디로 나가?"
"응? 지하철 내렸다고? 난 승강장인데?"
"어, 우린 이미 올라왔지."
2박 3일 치 짐을 든 누나와 아이들. 그 낑낑대는 행렬을 내가 못 찾을 리 없다고 나의 눈썰미를 과신했었다. 하지만 틀렸다. 나의 소소한 서프라이즈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호다닥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 개찰구 앞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3인방이 보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세 명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드라마였다면 "삼촌~!" 하고 달려와 품에 안기거나, 방방 뛰며 반가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조카들은 달랐다. 아이들은 90도로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치 거래처 미팅에 나온 바이어 같았다. 뭐, 섭섭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삼촌들에게 평생 살갑게 굴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살짝 어색한 공기를 뚫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그때, 서울에 대한 아이들의 감상평이 들려왔다.
"서울은 춥다."
그 건조한 한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그래, 삼촌이 서울 맛 좀 보여줄게' 나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