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4.
오늘은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는 날. 하지만 그전에 2차 신속항원검사 관문을 넘어야만 했다. 아침을 먹고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는데, 우리 중대 200명은 모두 음성이 나왔다. 이번에는 양성이 나오면 귀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또 생활관 안에서 격리를 하게 되는데, 그만큼 훈련을 빠지게 되어서 훈련병들은 은연중에 양성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에잉 참 역시 뜻대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다른 중대에서는 이때 확진자가 나오고 점점 퍼져서 나중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약간의 아쉬움을 머금고 다시 생활관으로 들어가서, 남은 오전 시간엔 2차 정신전력 교육을 들었다.
우리들은 이제 정신전력이라면 진력이 나서 노력만으로는 정신을 차릴 여력이 없었다.
오늘도 가만히 책상을 펴고 앉아 있노라니 혼이 반쯤 나가드라.
오늘의 키워드는 국가안보, 국가이익, 북한의 도발, 아시아 패러독스라.
북한이 주적이라는 말은 교재엔 없었으나 최근 뉴스에선 다시 주적이라는 표현을 쓴다더라.
느리게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다
머릿속이 어지러 빙글
고개는 위아래로 징글
지나가던 분대장님은 싱글
분대장님의 "모두 일어서!"라는 말에 잠을 깨고 점심때까지 서서 들었다.
오후에는 화생방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맛은 없었지만 밖에 나간다는 생각에 밥을 욱여넣고, 전투복으로 환복 후 어제 준비했던 군장에 총을 메고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군화를 신고 무게를 버티며 서 있으니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서 어색함이 느껴졌고, 우리 중대 사람이 다 모인 이후에 출발했다. 우리 분대가 1소대 1분대여서 선두를 맡아 걸어가는데, 군화도 어색하고 어디로 가는지 어느 정도 가야 도착하는지 감이 없어서 길이 매우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생활관은 입영심사대에 있어서 연대 생활관에서 출발할 때보다 훈련장까지 가는 길이 실제로도 더 멀었다.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 주둔지 안에서는 제식을 맞추어 걸어가야 하는데, 인솔자(보통 불쌍한 분대장 훈련병)의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추어 발을 맞춰 이동해야 하고, 중간중간 군가도 부르게 된다. 북한 열병식처럼 발을 90도로 올리며 걷는 것은 아니지만, 편하게 걷는 것보다는 다리와 발에 훨씬 많은 피로가 쌓이게 된다. 이렇게 걷다가 입영심사대를 나와서 육교를 건너 연무대(원래 연대 생활관이 있는 곳)로 들어가, 그곳을 반바퀴쯤 돌아서 다시 민간인 구역으로 나와 화생방 훈련장까지 한참을 걸었다. 민간인 구역에서는 조용히 편한 걸음으로 걷게 되는데, 묵묵히 걷다 보니 주변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동안 생활관에 갇혀 있다 보니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여 귀를 쫑긋 세웠으나 순식간에 대열을 이루어 지나가버려서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거름 냄새가 내 머릿속을 흔들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거름지역을 벗어난 후 다시 한참을 걸어서, 화생방훈련장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걸은 시간이 한 시간 조금 넘었다. 소대별로 정렬하여 자리에 잠깐 앉았는데, 군화 안쪽에서 물집의 예감이 느껴졌다. 나는 평발이 심해 이것으로 신체등급 4급을 받을 정도였는데, 군화는 운동화처럼 신축성이 있지 않아 평발인 경우 발의 특정 부분이 군화에 자꾸 쓸리게 되어 물집이 잘 생기게 된다.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벌써부터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었다.
화생방 훈련은 두 가지 평가를 보았는데, 하나는 15초 안에 방독면을 잘 꺼내어 쓸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쓴 방독면의 밀폐가 완전한지 확인하기 위하여 CS탄을 터트린 건물 안에 들어가 시험해보는 것이었다.
먼저 방독면을 쓰는 평가의 경우는 15초라면 굉장히 여유 있을 것 같지만, 책자에 적힌 절차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어려웠다. 먼저 평가를 볼 때는 생화학전 실전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땅바닥은 모두 이미 오염되었다고 가정하여 모든 장구 및 무릎은 땅에 닿지 않아야 한다. 시작은 서서 방탄모를 쓴 자세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쭈그려 앉아 총을 바닥에 닿지 않게 허벅지와 복부 사이에 끼우고, 방탄모를 벗어 세운 무릎에 올려놓고, 방독면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낸 이후 안면부를 마스크에 대고 마스크의 고무밴드를 머리 뒤쪽으로 돌려 착용하여 줄을 당겨 잘 밀착되게 고정한 후, 정화통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들이쉬어 밀폐가 잘 되는지 확인하고, 양팔을 밖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가스 가스 가스!" 하고 외치면 된다. 처음에는 쭈그려 앉아 균형을 잘 못 잡아서 허둥지둥했는데, 하다 보니 적응이 되어서 어떻게 다들 통과했다. 15초를 조금 넘겨도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화생방훈련의 메인코스, CS탄 코스가 남았다. 먼저 최근 라식을 하거나 천식, 알러지 등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열외 시키고 나머지 인원은 방독면을 열심히 잘 착용하고 밀폐를 확인한 채 대기하다가 순서에 맞추어 컨테이너박스 사이즈의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 안에서는 소대장님이 CS탄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CS탄 하나를 불을 켠 팬에 올려 기화시키셨다. CS탄은 최루가스 중의 하나로, 살상력은 없지만 눈과 콧속 등 점막과 피부에 달라붙어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는데, 공기보다 무거워 땅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고 구조가 갈고리 같이 되어있어 손으로 비비면 더 아프다는 설명을 들었다. 예전에 TV 같은 데서 보던 전형적인 악명 높은 화생방훈련은 CS탄을 터트린 이후 방독면을 벗거나 정화통을 제거한 후 애국가 같은 노래를 한 절 다 부른 후 눈물 콧물을 쏟으며 나오는 그림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위드코로나 시대라 그런지 다들 방독면을 계속 착용한 채로 건물 안에 일정 시간 동안 있다가 걸어 나왔다. 같은 조에서 방독면 밀폐가 잘 되지 않았던 친구들은 고통스러워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밀폐가 잘 되어 별 느낌이 없었다. 건물을 나온 이후에는 단체로 철새 무리가 된 마냥 양팔을 펄럭펄럭 거리며 붙은 CS탄을 털어내고, 방독면을 벗고 얼굴과 손에 물을 뿌려 CS탄을 제거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옆에는 눈이 벌게진 불쌍한 친구들이 있었다. 방독면이 아무래도 오래되어서 아무리 잘 쓰더라도 결함 부분이 있거나 하면 CS탄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훈련이 끝나고 다시 중대별, 소대별로 정렬한 이후 막사를 향하여 출발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분대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다른 소대, 분대들이 출발하는 것을 서서 바라보다가,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면서 눈과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CS탄을 터트렸던 건물은 우리가 정렬한 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는데, 아마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태운 CS탄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 분대를 덮쳤던 것 같다. 우리는 사태를 파악하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화생방장에서 대피했다.
또다시 한 시간을 걸어, 생활관에 도착하니 내 발과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까 물집이 잡힌 것 같은 부위가 최대한 덜 쓸리도록 걷다 보니 자세가 불편해져 반대쪽 발에 무리가 갔다. 군화를 신으면 걸을 때 발목의 움직임이 제한되기 때문에 아킬레스건 등에 더 큰 부담이 가해져, 전반적으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군화와 양말을 벗으니 역시나 물집이 잡혀있었다. 특이하게도 우리 분대에 평발이 심한 분대원이 나 외에도 많이 있어서 물집이 잡힌 사람이 많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리와 발에 고통을 호소해서 분위기가 생활관이 아니라 마치 병동 같았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 웬일로 돈까스와 카레가 나왔다. 둘 다 제품의 맛이 나서, 매우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 고생해서 더 맛있게 느껴졌나 보다. 이후 샤워도 하고, 아픈 발목에 에어파스도 뿌리고, 원래 물집은 터트리지 않는 게 맞지만 내일 또 걸어야 하므로 살짝 터트린 후 밴드와 물집방지패드로 발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들에게 원래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 약을 나눠주었다. 이거 정말 약장수 같은데, 100원씩이라도 받아야 하나?
오늘도 역시 불침번을 섰는데, 이제는 격리가 해제되었으니 생활관 안에서 불침번을 서는 것이 아니라 복도에 나와서 서게 되었다. 순번도 생활관별로 한 명씩이 아니라 소대별 번호 순서대로 3인 1조로 서게 되어서, 나는 3번이니까 오늘 첫 번째 순서로 서게 되었다. 복도는 생활관보다 밝고, 생활관과 겨우 문 하나 차이였는데 매우 추웠다. 불침번 때는 우리 소대 4개 생활관에 있어야 할 인원 중 혹시 빠진 인원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방에 들어가 확인하고, 화장실에 간 훈련병이 있다면 혹시 너무 오래 쓰지는 않는지 10분마다 한 번씩 확인하는 일 등을 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한 시간을 버티고 인수인계를 해 준 후 생활관에 들어가 모포를 덮으니 따뜻했다. 역시 온돌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