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2022.11.23.

by 윤윤

입소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 되었다. 익숙한 나팔소리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다가 보니 콧물이 주르륵 흐른다. 어쩐지 어젯밤에 불침번 설 때 춥더라니... 이럴 때를 대비하야 챙겨 온 콜대원 시럽을 하나 뜯어먹었다. 주위 몇몇 분대원들도 콜록 훌쩍거리는 것이, 소위 말하는 논산병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심한 친구들에게 가지고 온 콜대원을 하나씩 던져주었다.

이제는 분대장 훈련병이 선발되었으므로, 아침 점호 때 분대장 훈련병이 우리를 대표하여 모자를 쓰고 생활관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속으로 역시 안 하기를 잘했다 싶었는데, 대기가 길어져서 양반다리로 계속 앉아있으니 쥐가 나서 서있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약간 들었다. 몇 시간 후에는 역시 안 하길 잘했다 싶었지만.

맛없는 아침밥 이후 오늘 오전의 메인 일과는 오바로크였다. 위키백과에는 '오버로크(overlock)는 한 장 이상의 천 위에 바느질하는 바늘땀의 일종이다.'라고 나와 있는데, 오늘의 경우는 지급받은 CS복에다가 각자 받은 노란색 명찰을 잘 바느질하여 떨어지지 않게 붙이는 게 목표였다. 분대장 훈련병이 라운지로 가서 우리 분대원들의 명찰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어디 이상한데 가도 금세 찾을 수 있도록 눈에 확 띄는 병아리 같은 바탕색에 검은색 글씨로 쓰여 있는 내 번호, 10-003. 이걸 하의에 2개, 상의에 하나, 방상외피에 하나씩 오바로크를 치면 되었다. 상의에 붙이는 이름표는 각자의 이름도 쓰여 있어서, 나는 오늘에서야 온 분대원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대원들도 그랬을 거야... 아마도......

입소할 때 지급받은 바늘과 실을 드디어 쓸 타이밍이었다. 바늘귀에 실 한가닥을 쑥 넣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지, 벌써 노안이 왔나?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바느질을 해서 그런가 싶기도. 예전에 자취할 때는 뭔가 찢어지면 내가 직접 수선하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치 학창 시절 가정시간이 된 것처럼 한 땀 한 땀 작업을 시작했다.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 친구들도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소곳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손가락을 찔러 으악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러던 중, 방송에서 진군가라는 새로운 군가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노동요인줄 알고 기운을 받아 열심히 바느질을 했는데, 몇 번 들려주시더니 바느질을 하며 따라 부르라고(...) 하셨다. 가사도 잘 모르는 새로 배우는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바느질이라니. 보충역에게는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이었다. 다들 각자 가사와 음정 박자가 모두 어긋난 이상한 노래를 웅얼거리며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오합지졸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바느질을 잘하는 친구들은 자신의 업무를 마치고 손이 서툴어 헤매고 있는 친구들을 도와줬다. 훈훈한 오합지졸이었다.


밥만 많은 점심을 먹은 이후 핸드폰 사용 시간이 있었다. 각 생활관 앞에는 분대마다 핸드폰을 제출하여 자물쇠로 잠가 놓은 상자가 있었는데, 이를 핸드폰 사용 시간마다 분대장 훈련병이 라운지로 가져가서 잠금을 해제하고 가져오고,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핸드폰을 걷고 라운지로 들고 가 잠가야 하는 일을 수행해야 했다. 불쌍한 우리 분대장 훈련병...... 이를 퇴소 전날까지 반복하게 된다. 원래 핸드폰 사용 시간은 하루에 10분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오늘부터는 15분으론 늘어나게 되었다는 공지가 흘러나오자 우리 오합지졸 친구들은 단결되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후 세 시에는 외부강사 강연이 있었는데, 강연 주제는 우리가 지겹게 들었던 정신전력 교육이라고 미리 들은 것이 있어 모두들 이틀 전 오후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그때 방송으로 낭랑한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목소리가 마치 TV에 나오는 여자 아나운서 같아 우리들의 잠을 깨웠다. 강사분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강연을 많이 해 보신 것 같았는데, 마치 마법처럼 의욕 없는 훈련병들의 리액션을 이끌어내셨다. 그리고 중간에 쉬는 타이밍마다 어떤 싱어송라이터 분(열악한 음질로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이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마이크에서 멀리 떨어져서 불러도 생활관 전체에 울리는 성량으로 오전의 바느질과 맛없는 점심에 지쳤던 장병들의 기운을 북돋아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게 바로 위문공연인가. 이게 바로 훈련병의 전투력인가.


강연이 끝나고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이 남아, 수류탄 투척과 지혈대 적용, 심폐소생술법에 대한 선행학습을 실시했다. 역시나 분대장 훈련병이 라운지에 가서 모형수류탄과 지혈대, 심폐소생술 마네킹(Annie)을 가져왔다. 수류탄 투척과 지혈대 적용은 다들 책을 보며 하나하나 연습했는데, 심폐소생술은 우리 분대에 나라는 훌륭한 조교(?)가 있어서 분대원 친구들에게 멋진(?) 시범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해 보는 것이었지만, 역시 많이 해 본 것이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밥과 더불어 소떡소떡과 구구콘이라는 메뉴가 나왔다. 소떡소떡은 구운 것이 아니고 물중탕 된 것이었고, 아이스크림은 거의 다 녹아 크림이 되었지만, 그래도 바깥세상의 맛을 엿본 것 같아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그리고 코를 훌쩍이는 친구들에게 또 콜대원을 던져주었다. 마치 공짜 약장수가 된 것처럼.

샤워 이후에는 내일 화생방훈련 나가기 전 군장을 챙기고 입는 연습을 했는데, 내일은 훈련 나가는 첫날이고 화생방훈련장이 멀다고 해서 그런지, 비교적 가벼운 군장만 준비했다.(전투조끼, 방탄모, 방독면가방, 작은 배낭) 그래도 막상 매고 보니 몸이 무겁고 불편했다.

취침점호 이후에 이불을 펴고 누우니, 내일이면 격리가 해제되어 바깥공기를 쐴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본격적인 훈련 시작인데 몸이 버텨줄 것인지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들어 뒤척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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