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2022.11.22.

by 윤윤

오늘도 어김없이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침점호 이후에 아침밥을 받는데, 무려 사제 반찬으로 함박스테이크가 나왔다. 뜨거운 물에 들어있는 폴리프로필렌 백을 하나씩 받아보니 어쩌고 저쩌고 함박스테이크라고 쓰여 있었는데, 구석에 작게 '군용'이라는 마크가 박혀 있었다. 보자마자 입맛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게 먹었다.


오전에는 군법교육과 인권교육 시간이 있었다. 그 내용은 군인의 이념, 사명, 군법의 적용범위, 군인이지만 동시에 시민이라는 말의 의미, 사생활 침해와 성 관련 위반행위, 상관 모욕이나 명령 불복종 등의 법규 위반 행위 시 처벌 등이었고, 간단히 요약하면 점호 때 외치는 복무신조와 병영생활행동강령의 심화판이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는 방송으로 듣고 앉아 있으니, 역시나 졸음이 쏟아져 견디기가 힘들었다.

교육 중 역시 이걸 꿰뚫어 보신 교육관님이 창문을 다 열어놓으라는 지시를 내리셔서 창문을 열었더니 담배냄새가 나는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하필이면 우리 생활관이 흡연장을 딱 마주치고 있어서, 기간병들이 피우는 담배냄새가 그대로 흘러들어왔던 것이다. 훈련병들은 훈련기간 동안 담배가 금지되어 있어서, 사회에서 흡연하던 친구들은 그 냄새에 매우 고통스러워하였다.

교육 중간 쉬는 시간에 드디어 흡연자들이 며칠 전 신청했던 니코틴 패치가 보급되었는데, 흡연자 친구들은 패치를 팔에 붙이더니 조금 있다가 효과가 너무 좋았는지 나른함을 호소하며 드러눕기 시작했다.(일과시간에는 누워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담배냄새를 맡고 창문으로 가서 흡연장을 아련하게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마치 생활관에 갇힌 담배좀비처럼.


점심에는 만두, 꼬리곰탕, 오징어젓갈이 나왔는데, 수첩에 메뉴를 써놓을 정도면 맛있었나 보다.


오후에는 어제저녁에 한 것과 같이 방독면 착용 연습, 방독면 주머니 매는 법(어깨 매어, 다리 매어), 전투조끼와 방탄모 쓰는 연습을 했다. 장구를 다 착용하고 나니 생각보다 무거웠고, 특히 방독면가방을 착용하면 몸의 왼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서있거나 걸을 때 걸리적거려서 불편함이 있었다. 격리가 풀리면 훈련하러 갈 때 이런 장구를 다 착용하고 가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후에는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베레모, 운동화, 전투화(군화)를 보급받았다. 훈련병 때에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모자를 써야 하는데, 생활복일 경우에는 ROKA가 쓰여 있는 캡 모자, 전투복일 때는 항상 베레모를 착용해야 한다. 운동화는 생각보다 우리가 자주 신는 브랜드의 운동화와 비슷한 퀄리티였고, 전투화는 예전에 비하면 훨씬 재질이 나아져 나름 고어텍스였지만... 신어보니 역시 불편하긴 했다. 그리고 분대장님이 군화 끈 묶는 방법(5매듭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나는 그냥 풀리지 말라고 매듭을 더 만드나 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묶는 이유가 속세에서는 훈련병들이 군화끈으로 자살하려 할 때 묶인 매듭을 풀면서 순간적인 충동을 넘길 시간을 버는 용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운동화끈은 그냥 평범하게 묶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녁에는 순두부찌개, 고기, 닭꼬치, 요플레가 나왔는데, 수첩에 닭꼬치에 동그라미, 별표가 쳐져있던걸 보니까 정말 맛있었나 보다.


샤워시간 이후에 대망의 핸드폰 불출 시간이 있었다. 원래는 더캠프 앱으로 오는 편지를 읽으라고 하루에 10분씩 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인데, 내 주변 사람들은 더캠프 앱이 존재하는 자체를 몰랐다...... 최근에 군대 다녀온 친구들도 없어서 나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에서 보낼 수 있는 편지는 종이로 뽑아서 전달이 되는데, 오늘부터 편지를 쓸 수 있어서 편지가 내게 도착하려면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핸드폰이 켜지는 데에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내 생사를 궁금해하고 있을 와이프에게 생존 신고를 하니 10분이 훌쩍 지나갔다. 강제적 핸드폰 디톡스를 한 지 6일 차였는데, 10분을 쓰고 보니 감질맛이 났다. 요즘 월드컵 시즌이라는데, 우리나라 경기는 언제였던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분대원들 중에는 평소에 축구를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월드컵도 못 보게 입소할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고 구시렁대는 소리가 많았다.

취침점호 전에 분대장님이 들어오셔서, 여기 혹시 중대장, 소대장, 혹은 분대장 훈련병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이러한 자치근무자 업무를 하게 되면 인센티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일을 더 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모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분대장님이 신청자가 없으면 추천을 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시자마자, 15번 친구가 "16번 훈련병을 분대장 훈련병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라고 크게 외쳐서 16번 훈련병이 우리 분대장이 되었다. 새로운 분대장 훈련병을 제외한 열다섯 명은 한마음 한 뜻으로 크게 박수를 쳐서 환영해 주었다.

이렇게 저녁시간이 지나고, 어김없이 22시가 되어 잠에 들었다가 새벽 2시에 불침번을 하느라 깨어났다. 불침번 때는 역시 가만히 서 있으니 참 시간이 안 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