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6
33살에 논산훈련소 29연대 10-003으로 3주간 생활한 이야기.
기본적으로는 논픽션이지만 기억이 애매한 부분은 픽션일지도.
드디어 훈련소를 갈 때가 되었다.
나는 이미 작년부터 공중보건의로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훈련소를 다녀오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 공중보건의는 공중보건의들끼리 모여 3월에 훈련소를 다녀오는 것으로 복무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원래 훈련소를 가던 3-4월에 코로나 관련 기관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그에 따라 훈련소에 입소하는 시기는 늦춰지게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무려 복무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훈련소에 가게 된 것이었다.
일단 훈련소 가기 전날에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오늘은 미리 휴가를 내고 짐을 챙겨서 대전으로 출발했다. 자차로 논산까지 가서 바로 입소를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논산에선 3주간 차를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대안을 찾던 중에 대전 친구들에게서 카이스트에 주차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3주간 카이스트에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무사히 잘 운전해서 카이스트에 차를 대고, 나보다 훈련소에 늦게 갈 운명을 지닌 친구를 만나서 닭갈비를 먹고, 이전 직장 동료와 커피를 한잔하고, 홍형 집에 가서 드러누웠다. 홍형이 내일 쉬는 날이어서, 내가 내일 점심을 사는 대신에 홍형이 오늘 나를 재워주고 내일 논산훈련소 입영심사대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내게는 완전 남는 장사였다.
마냥 누워있다가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야식을 시켜먹기로 했는데, 그전에 해치워야 할 일들이 있었다. 먼저 머리깎기.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까까머리는 조금 싫다. 동네 미용실에서 만원을 주고 머리를 깎았다. 결과는 뭔가 생각했던 것보단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와이프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더니 잘 어울린다고 좋아했다......
그다음으로는 필요한 물품 사기. 훈련소에 가면 현역들은 자대 배치 전에 가져온 짐들을 택배로 집에 부쳐주는 친절한 서비스를 받지만, 보충역들은 3주 있다가 집에 가기 때문에 가져온 짐을 생활관에 진열해두게 된다. 따라서 훈련기간 때 필요하면 사제 물품들을 쓸 수 있다. 나는 이미 보충역 훈련소를 다녀온 친구들의 추천으로 콜드 브루 원액과 텀블러, 까까머리를 가려줄 모자를 샀다. 모자를 쓰고 보니 머리가 덜 추워서 좋았다.
야식타임에 맞춰 친구 세명이 더 왔고, 총 다섯 명이서 야식을 먹었다. 메뉴는 방어회와 치킨. 친구놈들 말에 의하면 훈련소에는 다 굽고 찐 음식밖에 없어서 날것이나 튀긴것은 먹기 어렵단다. 그땐 그런가? 하면서 먹었는데, 실제로도 그러하였다. 야식값은 나를 빼고 나머지가 나눠서 냈다. 친구님들이다. 훈련소에서 나오면 내가 야식 쏠게.
홍형은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지 10년이 넘었고, 나머지 셋은 전문연구요원이어서 나랑 같은 보충역으로 훈련소만 다녀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이들에게서 생생한 보충역 훈련소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X 같은 판초우의 - 입으면 냄새가 뭐같은데 심지어 판초우의와 안의 전투복까지 다같이 젖는다
정량배식 - 부족한 음식을 다같이 나누어 먹는것을 뜻한다
전우 - 군가중에 가장 짧아서 좋다
훈련병들 중엔 특이한 친구들이 매우 많다
분대장, 소대장 훈련병 같은건 절대 하지마라
등등이 있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밤을 보내고, 뭘 빼놓진 않았나 물건을 대충 챙겨놓고 다시 드러누웠다. 야식을 먹을 때 참 건전하게도 알코올을 한 방울도 섭취하지 않아 정신은 말똥말똥했지만, 일이 많았으니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금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