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2022.11.17.

by 윤윤

아침에 눈을 뜨니 아직 훈련소에 간다는 실감이 나진 않았다. 그저 밍기적밍기적. 평소에 아침을 먹지도 않으니 더 누워서 뒹굴다가, 이제는 정말 준비를 해야겠다는 시각이 되었을 때 씻고 홍형을 깨우고 짐을 쌌다. 정작 훈련소에서 쓰려고 가져가는 물건은 많지 않은데, 훈련소에서 나가기 전에 물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갔다. 누가 보면 오랫동안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이.

홍형 차 안에서 추억의 우리 세대 노래를 들으며 가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다. 휴일에 놀기도 바쁠텐데 나를 이렇게 논산까지 모셔다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랬더니 형은 예전에도 전문연으로 갔던 친구들을 많이 데려다줬다며, 훈련소에 가까워질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게 재밌었다고 낄낄 웃었다. 이거 남는 장사가 아니었는걸?

입소시간은 오후 2시여서, 오늘 점심이 최후의 만찬이었다. 작년에 논산훈련소에 다녀온 친구의 추천을 받은 한우집에 가서, 둘이 양껏 고기를 구워 먹었다. 후식으로는 난 원래 비빔냉면을 좋아하는데, 날씨가 쌀쌀하여 괜히 찬 음식을 먹었다가 첫날부터 배탈이라도 나면 곤란하니 온면을 시켜먹었다. 옆 테이블을 보니 20대의 머리 짧은 남자애 하나와 그 부모님으로 보이는 세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 수료식을 마치고 나온 것 같아 약간 부러웠다.


입영심사대에 도착하니 나와 같은 까까머리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입영심사대 마트에서 화장품 몇 개와 제로콜라를 산 다음 와이프와 영상통화를 하고 부모님, 장인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다 보니 거의 두 시가 다 되어서, 홍형과 빠이빠이하고 안내방송을 따라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내 앞 뒤로 똑같이 까까머리를 한 친구들이 캐리어를 끌고 개미떼처럼 줄지어 걷고 있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조교들의 말투가 점점 바뀌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친지들과 같이 있을때는 ~하기 바랍니다 ~하여 주십시오 하던 안내방송이, 입영장병들만 남았을 때에는 똑같은 존댓말이지만 ~하십시오 ~합니다 등으로 명령조로 바뀌었다.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 줄 서서 행사장(잔디가 깔린 축구장)에 들어온 다음에는 코로나검사(RAT)를 받았고, 음성이 나와 관중석에 앉아서 대기했다. (아마 양성인 친구들은 집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기확진자와 미확진자를 따로 분류하여 각각 따로 떨어진 곳에 앉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배치된 자리에 따라 중대*가 결정되었다.

내가 거의 2시에 맞춰 들어와서 그런지, 난 관중석의 모서리 부분에 다른 몇 명이랑 같이 마치 깍두기마냥 앉아있었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은 머리가 긴 채로 오른 다리에 짧은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짐을 싸들고 온걸 보니 나와 같은 신세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몸이 이러면 훈련은 할 수 있으려나 하는 궁금증이 살짝 들었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나에게 저 앞에 빈자리에 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뭔가 결격사유나 문제가 있어 누군가가 빠진 자리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강의 같은걸 들을 때 앞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었던 내가 맨 앞에 앉게 되니 뭔가 위화감과 싱숭생숭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이어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내용은 대충 이제 각자 나라사랑카드를 등록하기 위해 나와서 4열로 줄을 서라는 말이었는데, 등록한 이후에는 군법의 적용을 받는 훈련병의 신분이 된다는 일종의 으름장 비슷한 어구도 섞여 있었다. 지금 등록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입소해야 한다는데, 누가 머리를 한번 더 밀고 여기 다시 들어오고 싶을까.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우르르 일어서서 나가는데, 나는 앞쪽 자리기도 하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오랜만에 게으름을 이겨내고 열심히 걸어가 제일 왼쪽 줄 앞에서 세 번째에 위치하게 되었다. 등록은 왼쪽 줄 앞부터 차례대로 하였고, 나는 잃어버린 나라사랑카드(이미 카드 유효기간도 지났을 것이다) 대신 신분증을 제시하고, 10-003이라는 표를 받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10중대 1소대 1분대 3번 훈련병. 이름 순으로든 키 순으로든 나는 항상 중간이나 뒤쪽이었어서, 이렇게 앞 번호를 받아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등록을 한 바퀴 다 마치고 나서, 핸드폰 카메라를 차단하는 국방모바일보안 앱을 깔고, 다시 앞으로 나가 아까처럼 4열로 번호대로 줄을 섰다. 그리고 소대장님의 지도에 따라 운동장 한편으로 걸어갔는데, 내 뒤를 보니 아까 그 목발 짚은 친구가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얘는 4번이겠구나. 그런데 목발 짚고 이렇게 훈련해도 괜찮은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받은 훈련은 제식교육이었다. 차렷 열중쉬어 좌향좌 우향우 뒤로돌아 양팔간격 좁은간격 바른걸음으로 가 등등... 집단이 개인(상급자)의 통제에 따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북한군 열병식 행진도 제식이긴 하지만 보충역인 우리에게는 아무도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소대장님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사람도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훈련병들 나이를 물어보셨는데, 내 앞에서 스물넷, 스물둘 이러다가 내가 서른셋이라고 하니 흠칫 놀라신 것 같았다. 그다음 말씀이 이러하였으니 말이다. "여기에 다양한 나이의 사람이 많고 연세가 많으신 분도 있지만......"이라고 하셨다. 하하. 연세가 많으신 나는 어렸을 때 배운 기억대로 하니 제식교육이 어렵진 않았다.


제식교육이 무난히 끝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생활관으로 짐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반팔티와 팬티, 동계생활복, 슬리퍼를 지급받았다. 넉넉하게 고르라는 말을 듣고, 평소에 입는 것보다 한사이즈 크게 골랐다. 생각보다 속옷 퀄리티는 괜찮았다. 막사는 행사장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매우 낡아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좁은 생활관에 우리 분대 16명이 들어가니 금세 짐과 사람으로 가득 차서 혼잡해졌다. 요즘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생활관들은 더 넓고 침대인 곳도 있던데, 여기는 푸른거탑 같은 곳에 나오던 20년은 족히 넘었을 침상형 생활관이었다. 여기서 임시로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진실은 내일 알게 된다.

저녁밥은 준비가 안되어서 대신 컵라면과 전투식량을 받았는데, 전투식량은 뜨거운 물을 부은 지 한 시간이 넘은 것 같이 밥이 딱딱해져 있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음 군대가 이런 건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하나하나 뜯어서 뜨거운 물을 부었을 분대장님들의 고생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후에는 분대별 샤워시간(입소 후 일주일 동안은 격리기간이라 같은 분대끼리만 세면, 샤워 등을 같이 할 수 있다), 핸드폰과 귀중품 수거, 아픈 사람 조사, 운동화 사이즈 등 조사 등의 일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대기시간에는 육군가와 육군훈련소가를 틀어줬는데, 쉬운 노래 두 곡이었지만 번갈아 들으니 오히려 헷갈려 외우기가 어려웠다. 옆에 있는 분대원들하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가, 다들 번호만 쓰여 있는 표를 오른쪽 가슴에 달고 멀뚱하게 있으니 이름도 잘 모르겠고 어색하기도 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21:00이 취침시간이었다. 그전에 매트리스를 깔고, 모포를 하나는 깔고 하나는 덮고. 옆자리 친구들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누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분대원 중 누구 하나는 첫날에 그렇게 누웠더니 자연스레 눈물이 났다더라. 몸은 피곤한데 평소에 자는 시간이 아니라 멍하니 누워있다가, 23시에 2번친구가 날 두드려 벌떡 일어났다. 내가 3번째 불침번 순서였는데, 23시부터 자정까지, 격리기간이라 생활관 입구 안쪽에 빨간 등을 켜놓고 그 아래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하루에서 가장 긴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정이 되어 불쌍한 4번 목발 친구를 깨우고 잠이 들었다.



* 훈련병의 편제는 기간병들과는 규모와 인원이 다르다. 내가 간 훈련소에서는 대강 이러하였다.

논산 육군훈련소 내에는 총 7개의 신병교육연대(23,25,26,27,28,29,30)가 있다.

내가 간 29연대는 총 3개의 교육대로 나누어져 있고, 각 교육대에서 한 기수의 훈련병을 받아 교육하게 된다.

각 교육대는 4개의 중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가 간 제3교육대는 9,10,11,12 중대가 속해 있다.

중대 : 한 중대 당 180-200명의 훈련병, 3개의 소대로 나뉜다.

소대 : 한 소대 당 60-64명의 훈련병, 4개의 분대로 나뉜다.

분대 : 한 분대 당 15-16명의 훈련병, 한 분대가 하나의 생활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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