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이토록 따뜻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경배하라(4.5)
새해 첫 영화 단상이 크리스마스 영화인 것을 보면 정말 오래 쉬었나 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찮음과 우울감 때문인지 몰라도 단상을 쓰는 것조차도 힘들다. 그럼에도 단상을 쓰기로 한 글이 기적에 대한 영화인 것을 보면 나이를 먹었음에도 아직 기적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라는 국내 개봉 제목과 다르게 영화의 본제는 "Tokyo Godfathers"로 "도쿄의 대부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3명의 노숙자가 우연히 신생아를 만나 부모를 찾아주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영화는 제목과 접목하면 노숙자들이 신생아의 대부가 되는 이야기로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다시 국내 개봉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신생아, 노숙자, 대부. 관계가, 즉 단어 사이의 서사를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숙자들이 신생아를 만났다는 것도 그렇고 노숙자들이 대부가 된다는 것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 즉 단어의 상황, 서사 등에서 신생아와 대부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어도 그 사이에 노숙자가 들어가는 순간 세 단어의 관계는 해피 엔딩보다 새드 엔딩이 떠오른다. 애초에 노숙자들이 아이를 납치한 거 아닌가, 중간에 어떤 사건으로 납치범들이 대부가 되는 코믹한 엔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르게 말하면 신생아, 노숙자, 대부, 이 세 단어의 관계를 해피 엔딩으로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을 그린 것과 같다.
출처. 왓챠피디아
기이한 발자취(奇跡) 혹은 흔적(奇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기적은 현실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어떤 자취이다. 현실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경이와 경외를 느끼게 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렇기에 논리적인 기승전결에 기반하는 서사에서 기적을 표현한다는 것은 모순과 다름없다. 현실의 법칙에 기반해 상상되어진 서사에서 그 법칙과 무관한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한 사건은 서사 속 세계의 모든 것과 무관하기에 다른 모든 것에 완벽하게 영향을 주게 되며 결국 서사 자체의 의미를 상실시킨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도 하는 이러한 기적은 때에 따라서 불가해한 공포처럼 서사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으나 보통의 경우에는 서사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작가든, 관객이든 기적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기적 외의 존재이기에 서사의 흐름이 기적에 의해 무용하게 될 경우 아무런 감정적 정동이나 이성적 깨달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할 수 있는 기적을 서사 곳곳에서 사용하면서 신생아, 노숙자, 대부의 관계를 엮어간다. 서사 구성의 기본 원칙과는 정반대로 기적을 사용해 서사를 완성하는 영화의 발자취는 제목처럼 만나기 힘든 기적을 보고 있는 듯하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 기적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영화에서 처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적용되는 지점은 '긴(에모리 토오루 목소리)', '하나(우메가키 요시아키 목소리)', '미유키(오카모토 아야)'가 키요코를 데리고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갈 때이다. 키요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쟁을 벌이며 길을 걷는 그들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건 쌓였다가 떨어지는 눈이건 모두 보이지 않는다는 듯 걸어간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간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고가 날 듯 말 듯하게 아슬아슬 지나쳐가지만 실제로는 마치 세 사람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듯 지나간다.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자 천사라는 키요코의 능력인 것인지 아주 작게나마, 하지만 확실하게 세 노숙자 주변에는 어떤 기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러한 기적을 아주 작지만 착실하게 쌓아가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마치 어떤 인물인 것처럼, 즉 세계의 한 구성 요소인 것처럼 인식시킨다. 다르게 말하면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서사 속 법칙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불가해하고 차가운 존재가 아니라 항상 주변에서 존재하는, 작게나마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존재가 된다.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속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마지막 도시풍 장면을 제외하면 어떤 상황 법칙을 따르고 있고 심지어 그 도시풍 장면마저도 사실 현실의 물리 법칙을 어느 정도는 따르고 있다. 도시의 불량 청년들에게 당한 폭력으로 쓰러진 긴 앞에 과거 하나가 일하던 게이바의 동료가 나타나 구해준다거나, 우연히 야쿠자 두목을 도와줘 잠시 양껏 먹을 수 있는 파티를 간다거나 등. 우연하지만 우연하지 않은 일들은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동시에 기적이다. 그렇기에 법칙을 따르고 있음에도 어떻게 바로 그 순간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그러한 기적이 세 노숙자와 키요코에게만 발생하는지만을 생각하면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미적지근한 영화로 혹은 평범한 감성팔이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른 여러 날과 비교해 크게 다른 날이 아님에도 크리스마스는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바라는 날이자 아기 예수가 인간의 죄를 스스로 받기 위해 태어난 날이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 온 가족이 모이는 따뜻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흔히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날임에도 긴, 하나, 미유키와 같은 노숙자나 삶을 포기한 채 막장으로 살고 있는 '야스오(이시마루 히로야 목소리)', 그런 야스오에게 폭력을 당하고 아이는 유산되어 정신이 나간 '사치코(테라세 쿄코 목소리)' 등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살기 힘든 날 중 하루일 뿐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적을 바라며 살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그렇다면 그렇게 바라던 기적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를 크리스마스에 스크린 속 그들에게 스크린 바깥의 우리가 기적을 바라줄 수도, 그들이 마주하는 기적을 축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