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세상보다 빠르거나 속도는 맞추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흔히 말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뭘 의미하는지 모를 말과 행동이 주변을 둘러싸고 세상에서 점점 뒤처진다고 느끼면서 정신없이 바뀌는 세상을 바라만 본다. 그러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찾아본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잠시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야말로 ‘나’다운 것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별거 아니지만 가을이었던 시기가 오면 파랗게 탁 트인 하늘을 보게 되고 땅에 떨어진 단풍을 보며 잠시 센치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늘과 땅을 보다 보면 문득 ‘아, 이제 우동 먹을 때가 됐구나.’하고 걸음을 옮긴다.
언제 어디서나 웬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현대에서 뭔 갑자기 가을이 되어야 우동을 먹고 싶냐고 할 것이다. 더운 여름에 먹기 좋은 냉우동도 요새는 많은 식당에서 다양한 형태로 판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우동은 바람이 쓸쓸하게 휑하니 부는 때가 오면 생각나 엄마 손을 잡고 먹었더랬다. 바람 불 때쯤 “국물이 끝내줘요!”하는 우동 광고를 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우동은 바람이 쓸쓸하게 부는 시기, 가을에서야 따끈한 국물 한 모금 하고 굵은 면발을 호로록 땡기며 “흐어, 시원하다.”를 외치게 한 음식이다. 겨울에 먹는 우동도 기가 막히지만 센치하게 하늘과 땅을 보다가 한 그릇에 옆구리 따따시 하게 길을 걷게 하는 가을 우동이 진짜 우동이 아니겠는가? 라는 핑계로 숲길을 걸으며 홍대 ‘고토히라 우동’으로 간다.
첫 방문이 2019년 3월 11일. 그 때는 봄이라서 우동을 먹으러 갔나 보다. 뭐 봄이나 가을이나 결국 뭔가 센치해지는 계절이니 퉁칠 수 있지 않겠나? 당시에는 치쿠와 우동, 한국어로는 어묵튀김 우동을 먹으며 센치한 봄을 따뜻한 봄으로 바꿨다. 그러고 보니 19년 봄도 겨울이 끝나고도 여전히 추워 이제 정말 한국은 여름과 겨울 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 2년이 지난 21년 가을은 하루 덥고 하루 춥고를 왔다 갔다 해 지구 멸망의 날이 얼마 안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대학원이 위험하다. 종말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찬 밤바람에 날려 보내며 반지하인지 1층인지 애매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2년 전과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 언제 종말을 생각했냐는 듯 오늘 먹을 우동을 고민하다 커다랗게 올라간 새우튀김에 홀려 에비텐 우동을 주문한다. 새우튀김이 종말을 이긴다.
19년 때와 마찬가지로 육수는 여전히 파향과 불향이 가득하다. 달달하고 진한 파향 사이로 불향이 함께 올라와 입맛을 돋운다. 면도 미리 곱빼기로 주문해서 양도 충분하다. 19년에는 면을 다 먹고 추가했나 보다. 바보 같으니... 그런 건 미리 주문했어야지 과거의 ‘나’. 가을의 차고 쓸쓸한 기운은 파와 불로 데워져 몸이 덥게 느껴진다. 거대한 새우튀김은 육수를 머금으면서 반은 후두둑 떨어지고 반은 바삭하게 붙어있다. 튀김옷 안 탱글한 새우살이 잇몸에 자신의 탱글함을 남긴다. 곱빼기로 주문한 우동 면을 튀김에 한 번, 육수에 한 번, 부들부들하면서 쫀쫀한 식감을 뽐내는 유부에 한 번. 곱빼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육수를 제외하면 남은 면이 없어 남은 육수를 한 번에 털어 넣는다. 그릇은 바닥을 보일수록 항상 옳다.
우동 한 그릇에 어느새 세상을 센치하게만 바라보던 눈은 풀리고 사람이 거의 없는 홍대 골목들이 보인다. 신촌‧홍대 일대를 고3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을 보내면서 많이도 변했다. 사람이 변했고 입주했던 가게들이 바뀌었으며 지금은 거리가 텅 빈 것이 시절이 과거와도 다른 시절인지도 알겠다. 고3 때와 지금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어쩌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아니다. 2년 동안 변하지 않은 가게 풍경이 있다. 봄‧가을이 되면 우동을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안 변했다. 가을이라 생각되는 시기가 오면 괜시리 하늘과 땅을 보는 것도 안 변했다.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것과 함께 있다. 변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변하지 않은 것 중 몇 개를 챙기면서 살아간다. 정신없이 변하는 와중에 변하지 않은 것을 챙기며 사는 것. 그것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