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정당화, 그 사이의 경계

뮤지컬 <인터뷰>를 보고

by 북두칠성

재밌다는 입소문과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극’이라는 짧은 소개에 이끌려 보게 된 뮤지컬 <인터뷰>. 우연히 표를 예매하게 된 날이 막공이었기에, 마지막 공연 특유의 배우들의 내일이 없다는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공연이 끝나 뒤 무대인사와 각자의 해석까지 들으며 극을 100% 느끼며 감동할 수 있었다.


기괴한 분위기 속 느껴지는 몰입감

극은 시작부터 끝까지 음산하고 기괴하며 공포스러운 공기를 유지한다. 공포물에 취약한 나로서는 내내 심장을 졸여야 했지만, 그 긴장감이 곧 이 작품의 큰 매력이었다. 잠옷 차림으로 등장해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누가 울새를 죽였나”를 노래하는 조안의 모습은 이 작품이 결코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예고한다. 유아적인 행동과 대비되는 스산한 가사는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편함은 극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분열된 자아들의 지독한 대립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던 유진 킴과 그의 보조 작가가 되기 위해 찾아온 싱클레어. 두 사람의 면접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과 긴장감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던 중 소설을 써보라는 요구에 싱클레어가 응하며 부모에게 외면당한 소년이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어머니를 살해한다는 누구나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구현하기 어려운 잔혹한 서사가 넘버로 구현되는 순간, 무대는 붉은 조명과 함께 광기에 휩싸인다.


특히 싱클레어 역의 현석준 배우가 보여준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잔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노래하던 인물이, 순식간에 눈빛을 바꾸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효하는 장면은 전율을 넘어선 공포였다. 블레이저를 벗어던지고 드러나는 해리성 다중인격의 모습은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터프하고 다혈질적인 남자를 연기하다가도, 누나와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다가도, 떠나지 말라고 절규하며 인격을 오가는 모습은 자아의 붕괴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단연 압권의 연출이었다.


반전의 수미상관, 그리고 윤리적 질문

폭풍 같은 감정이 지나간 뒤, 무대 위에 홀로 남은 유진 킴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격정적인 대립과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발로 구성된 인터뷰는 싱클레어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설계한 가상의 공간과 역할극이었다는 통화 내용으로서 완성되는 수미상관의 구조와 반전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며 비극의 깊이를 한층 더 심화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백미는 무대인사에서 나왔다. 배우들이 배역에서 벗어나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주는 온기 속에, 현석준 배우가 던진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싱클레어의 행동은 그가 앓고 있는 해리성 다중인격장애라는 질병과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대중들은 그 아이를 연민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폭력과 살인이라는 반사회적 행동은 절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해와 정당화 사이의 이 경계는, 배우가 캐릭터를 얼마나 치열하게 고뇌했는지, 그리고 이 작품이 단순한 심리극을 넘어 왜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오래도록 남을 불편함의 가치 <인터뷰>는 감정 소모가 크고, 관객으로 하여금 불쾌하고 찝찝한 심정을 들게 만든다. 사람들이 흔히 외면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인간 내면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무겁고 어둡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해와 정당화 사이의 줄타기. 관객의 내면이라는 바다에 자그마한 파도가 일렁이게 하고, 그 파도가 행동으로 이어져 변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것. 그게 바로 문화예술의 사회적 기능이자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이다.

작가의 이전글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다가오는 삶에 대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