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암흑 속, 꿈이라는 빛을 따라간 청년들

뮤지컬 <일 테노레>를 보고

by 북두칠성

창작 초연임에도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었다는 점, 대극장을 채우던 배우들이 중극장으로 왔다는 점 등 관극 전에는 불안과 분노가 가득했었던 작품이 있다. 지난 2023년 막을 올린 창작초연극 <일테노레>다. 그러나 뚜껑을 연 <일 테노레>는 탄탄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연출,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된 명작이었다. 무겁고 어두운 파멸극을 예상했으나, 나라를 위한 대의와 꿈을 위한 열정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웃음과 감동이 뒤섞인 극이었다.


중극장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섬세한 무대

무대 크기는 그리 거대한 편이 아니었고, 360도 회전무대와 다채로운 빛깔의 조명이 무대를 비춰주는 등 무대 전환이 상당히 많았다. 중앙의 커튼이 걷힌 채 텅 빈 무대를 흰 조명을 받으며 걸어 나온 이선이 오로지 목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장면들은 중극장의 섬세함을 십분 활용한 연출이었다. 대극장의 웅장함은 없지만 아름다움과 여운이 남는, 장면들이 많았다.


또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을 강조하듯 모두가 앞을 바라보며 밝은 빛 아래에서 눈망울을 빛내며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많았다. 나라를 위한 간절함과 최초의 오페라를 올리려는 절실함이 더해져 그 장면들은 하나하나 감동을 주었다.


긍이선과 홍이선, 두 천재가 보여준 '꿈의 무게'

작품의 중심에는 윤이선이 있다. 평생 부모님이 정해준 길만을 걸어오며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몰랐던 어리숙한 의대생. 모범생의 상징인 안경을 쓰고 어리바리하게 문학회에 발을 들인 그는, 우연히 마주한 오페라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내린다.


박은태 배우(긍이선)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초반부의 어벙함을 표현하는 눈동자, 그리고 오페라의 꿈을 키워가며 깊어지는 눈빛의 변화가 압권이었다.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광명을 찾아가는 '모범생' 이선을 보여줬다면, 홍광호 배우(홍이선)는 이미 내면에 완성되어 있던 음악적 재능을 점점 개방해가며 우렁차고 강인하게 성량을 폭발시켰다. 고막과 가슴이 함께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1막과 2막의 시작 장면에서 만나는 백발 노인의 윤이선은 놀라움을 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단상에서 내려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청년 시절로 전환되는 연출은 극의 깊이를 더한다. 홍이선의 경우, 많은 것을 이뤄낸 뒤 알 수 없는 씁쓸함과 회의감을 느끼는 듯한 노인의 표정이 가히 예술이었다.


나라를 위한 대의와 꿈을 향한 열정 사이의 엇갈림

조국을 배신한 부모와 연을 끊고 스스로를 책임지려 한 수환, 나라에 몸을 바칠 각오를 한 진연, 그리고 유복한 환경에서 억압받다 처음으로 주체적 선택인 '꿈'을 만난 이선. 나라를 빼앗긴 아픈 현실 속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세 사람이 최종장에 돌입하기 전 겪는 의견 차이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서로를 희생하려는 수환과 진연, 그리고 독립을 열망하면서도 스스로의 갈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선. 회전무대 중앙의 이선과 양옆의 진연, 수환이 부르는 삼중창은 그들의 다르면서도 비슷한 길 끝에서의 간절함을 구슬프고 절절하게 전달해 주었다.


산산조각 난 예상, 그리고 최고의 엔딩

사실 1막과 2막의 도입부를 보며 이선과 진연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사 후 스스로 희생을 결정한 진연의 편지를 동료들이 함께 읽어나가는 동안 내 예상은 산산조각 났다. 조국과 동료를 위해 모든 걸 짊어지기로 한 진연의 결정, 하늘의 별이 된 채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모습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건축가가 된 수한의 오페라극장 개관식에서 연설을 하는 일테노레 이선의 오프닝 시점으로 극은 돌아온다. 사랑하던 여인이자 신뢰하던 동료의 숭고한 선택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두 남자의 세월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녀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결국에는 목표를 이루었으나 하지만 이선은 가슴 한 켠에 남은 후회라는 감정을 지우지 못했다. 여전히 오페라는 접근성이 낮은 비싼 문화였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 맞는지, 꿈이 정말 이뤄진 것인지 회의감을 갖는다. 그런 그의 귓가에 젊은 시절 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눈앞에는 그가 사랑했던 젊은 진연의 모습과 문학회의 동료들의 젊은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이선의 삶의 끝이 다가왔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선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내 무대 뒤편 오케스트라가 등장하고, 이선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마지막 오페라를 부른다.


비로소 안식을 허락받은 영혼

1막에서 동료들을 대표해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던 윤이선의 '꿈의 무게'는 모든 이의 짐을 짊어진 간절한 도전이었다면, 2막의 마지막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부르는 '꿈의 무게'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기에, 보다 가볍지만 그렇기에 더욱 묵직했다. 평생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안타까운 운명의 윤이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지친 육신에는 영원한 안식을, 외로운 영혼에는 영원한 사랑과의 동행을 허락해달라 외치는 그 노래는 몇 번을 봐도 눈가가 젖는다.


한 사람의 삶의 무게와 깊이, 한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환상적인 오페라는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며, 오늘날까지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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