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퀴리>를 보고
과학이라는 숭고한 신념과 인간성의 대립
라듐을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골자로 한 뮤지컬 <마리 퀴리>는 투철한 직업정신, 시대의 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경제적 이익과 인간성의 대립, 그리고 두 동료의 따스한 연대까지 담아낸 명작이다. 1막의 방대한 과학 상식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맞물려 극을 탄탄하게 지탱했고, 네 명의 캐릭터가 각자의 신념으로 어두운 현실을 살아내는 모습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보랏빛 조명과 회전 무대가 빚어낸 효율적 구현
작은 무대지만 라듐의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보랏빛과 초록빛의 영롱한 조명 연출은 퀴리의 열망을 시각적으로 투사했다. 화려함 대신 중앙 벽면이 회전하며 연구실, 공장, 도심을 넘나드는 연출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현해냈다. 특히 앙상블의 활용이 돋보였다. 학회실의 냉소적인 남학생들, 반복적인 업무의 공장 직원들, 그리고 '라듐 파라다이스'의 경쾌한 반주와 클럽 조명 아래 춤추는 모습은 비극적 서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마리 퀴리의 열정과 광적인 몰입
실험실에 앉은 노년의 퀴리가 딸과 대화하며 극은 시작된다. 굽은 허리와 쇠약한 목소리로 삶의 회의를 내뱉던 유리아 배우가, 과거를 회상하며 순식간에 눈동자를 빛내며 젊은 목소리로 돌아오는 찰나의 변주는 경이로웠다. 프랑스행 기차에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던 마리를 구해주며 등장한 최지혜 안느와의 첫 만남은 뭉클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없어도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마리와, 굳은 심지로 당당히 세상을 살아가는 안느는 서로의 진정성을 알아본 강인한 인물들이었다.
연구실에서 마치 세상에 자신과 원소 단 둘만 존재한다는 듯 몰입하여 광기에 가까운 표정 연기를 보여준 '율마리'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던 시절,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노선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하지만 라듐의 위험성이 드러나고 공장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마리는 혼란에 빠진다. 루벤의 탐욕과 안느의 호소 사이에서, 높은 구조물 위 다시 만난 두 친구의 대화는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다.
잊었던 가치를 일깨워준 깊은 연대감
"내가 너를 좋아한 건 라듐 때문이 아니라, 마리 퀴리였기 때문이야"
흐느끼듯 터져 나온 안느의 이 한 마디는 전율을 일으켰다. 전례 없는 길을 만들어온 개척자 마리는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정작 스스로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안느의 진실된 호소는 마리의 정체성을 다시 깨워준다. 항해하는 배를 이끄는 북두칠성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빛나는 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멀어졌던 구조물이 다시 가까워지며 두 친구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결국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이름이 곧 단위가 된 아름답고 치열한 삶
다시 돌아온 노년의 마리 퀴리의 시점, 딸과의 대화가 마무리된 뒤 스크린에는 'Ci(퀴리)'라는 단위가 그려진다. 그녀의 이름이 원소를 나타내는 단위가 됨으로써 마리 퀴리의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삶이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보여주는 연출은 가히 최고였다. 길이 없다면 스스로 길을 만들고, 전례가 없다면 스스로 최초의 사례가 된 여성. 그녀의 항해는 무대 위에서 영원한 빛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