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행복 VS 혼란스런 진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by 북두칠성

평화를 깨트리는 불편한 진실과 혼란

이 작품은 진실과 거짓, 행복, 신념, 주체성을 비롯한 가치들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돈 파블로 맹인학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규율과 원칙, 신념에 의거하여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만의 이상적인 공간이다. 리더 까를로스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생활하는 그들의 곁에 어느 날, 불편한 지팡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지팡이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그나시오다. 그는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은 전혀 불행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가 없고, 바깥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맹인학교의 학생들에게 그들은 착각에 빠져있으며 진실을 외면하고 있고 매우 불행하다는 현실을 일깨우고 혼돈을 가져다주겠다고 말한다.

1막에서는 그런 이그나시오에게 좀처럼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환한 미소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스산한 감정이 들었지만, 맹인이라는 결점을 자신들만의 연대와 규율로 어느 정도 극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따스함을 느꼈었다. 앞을 봐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둠 안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을 느낄 수도 있기에 이미 행복을 느끼고 있고 안락함과 공존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평화를 왜 깨트리려 하는지, 자신의 불온 사상을 퍼뜨려 도대체 그가 얻는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단순히 반골 기질이 심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노력의 숭고한 가치,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결핍

그런데 1막의 끝자락에서부터 조금씩 생각이 변화되었다. 까를로스는 우리는 안전하고, 지팡이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그나시오가 설치한 한 개의 의자만으로 그 주장은 파훼됐다. 학교의 구조를 완벽히 알고 있고, 길을 외우고 있으나 그 길에 의자가 하나만 놓이더라도 앞을 볼 수 없는 그들은 걸려 넘어지게 된다. 까를로스는 이그나시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겠다며 애쓰지만 자신의 앞에 장애물이 놓이게 되자 부딪치는 게 두려워 그 자리에 멈추고 결국 그들의 신념과 안전은 거짓된 것임이 드러난다. 돈 파블로 맹인학교는 무결점의 안정적인 낙원이 아니라, 그저 거짓 위에 세워진 모래 위 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그나시오로 인해 조금씩 생겨나던 균열을 점점 커지고 급기야 까를로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은 이그나시오의 사상에 감화된다.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학생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시력을 되찾는 미래를 갈망하는 부분이었다. 결핍은 인간을 움직이고 노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1막에서 이그나시오의 사상에 공감할 수 없던 이유 중 하나가, 냉정하게 맹인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현대 의학으로 장님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설령 어둠 속에 갇힌 채 삶이 끝나게 되더라도 빛을 갈구하며 노력한다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게 된다. 성취가 없더라도 삶은 도전과 실패의 연속된 과정이며, 그 과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그나시오가 깨우쳐준 또 하나의 사실은 맹인 학교의 학생들은 언젠가는 그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학생일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다면 그들은 사회로 진출하게 된다. 사회에는 수많은 개성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의 규율과 원칙과 학생들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생활은 끝이 존재한다. 결국 학교 안에서의 행복은 세뇌와 외면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행복의 이면에 감춰진 세뇌와 통제와 거짓이라는 허상

그리고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백미. 까를로스와 도나 페피따의 독대 장면이었다. 학교장이자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존재인 도나 페피따는 까를로스에게 책임감과 리더십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이그나시오를 도려내야 할 악처럼 규정하며 학생들을 인격체가 아닌 보호가 필요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모든 것이 거짓과 허상이라는 의구심에 쐐기를 박는 장면이다. 앞을 볼 수 있기에 맹인들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는 그녀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맹인학교의 학생들이 누린 평온은 그저 그들을 통제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독재자 도나 페피따의 손아귀에서 시작된 조종이었을 뿐이다. 이미 몇 년간 그녀에게 세뇌당한 까를로스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진 채, 도나 페피따의 말대로 이그나시오를 옥상에서 밀어버린다.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니, 처음부터 제자리라는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빛을 추구하던 학생들은 다시 어둠 속 평화로 돌아간다. 이그나시오의 존재는 곧 힌다. 그러나, 까를로스만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을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도 부정했지만 그 역시도 빛에 대한 갈망과 잠깐 사회로 나갔을 때 느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둠이 아닌 뚜렷한 색채와 빛이 존재하는 그의 상상 속 세상이 무대 위 구현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까를로스의 비극적 결정과 함께 극은 막을 내린다.


각자만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이그나시오의 사상이 학교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점, 도나 페피따는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고 통제의 대상으로 봤다는 점, 누구보다 신념이 강한 리더 까를로스도 이그나시오 사상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 믿고 있었다는 연출을 통해 알 수 있다. 돈 파블로 맹인학교가 거짓과 허상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삶 자체를 부정할 수 없으며 진실과 평온 사이에 무엇이 정답인지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대신 끝없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 역시도 신념이라는 가면을 쓰고 진실을 외면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어쩌면 우리 모두 어둠 속에서 고요히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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