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리다>를 보고
지난 2023년 여름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딱 한 번 본 적 있는 작품인 뮤지컬 <프리다>. 단 4명만이 등장하는데도 천 석 이상 규모의 대극장에서 진행되다보니 무대가 많이 비어보였고 전반적으로 몰입이 어려웠었다. 그런데, 오늘은 깨달음을 얻었다. '보다 작은 극장에서, 더 가까운 자리에서 집중해 보니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이 극은 단순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봐야 한다'는 생각을 줄 줄곧 했었다. 개인적으로 삶에서 가장 큰 굴곡진 상황에 놓여있기에, 인생이 그리고 세상이 수도 없이 고통과 좌절과 절망만을 주는데도 꿋꿋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프리다의 삶의 태도를 꼭 배우고 싶었다.
특히 정유지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던 공연을 뚫고 드디어 첫 공연을 하게 된 서사는, 배우가 거쳐온 인내와 고난의 시간을 통해 극 중 주인공의 회복과 재생의 메시지가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데스티노는 프리다에게 "삶이 너에게 좋은 것만 주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이건 굉장히 순화된 표현이지 않은가. 좋은 것만 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줄 수 있는 최악의 것들만 던져주는데. 고통이 뭔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나이에 소아마비를 겪고, 끔찍한 사고로 첫사랑을 잃고 전신이 망가지고, 사랑에 배신당하는 그 처절한 비극들. 가상의 인물이 겪었다 해도 가슴 아플 일들이 현실에서 단 한 명에게 연이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의지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된다.
인생의 적신호가 켜지듯, 프리다가 넘어질 때마다 불쾌한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마치 비명처럼 들린다. 그 자리에 멈추더라도 누구도 비난 못 할 고통을 여러 번 겪고도, 프리다는 그림으로 삶을 남겨 아픔을 승화시키고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게 사이렌 소리는 이제 경고가 아닌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코르셋을 벗고 새하얀 옷을 입은 정유지 배우는 환생한 프리다 칼로처럼 느껴졌다. 여배우 중 흔치 않은 중저음의 묵직한 음색은 '흉터'를 숨기지 않고 그 위를 밟고 올라선다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흩날리는 꽃잎 속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의 백미인 독무는 빈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색채를 채워 넣는 형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우수수 떨어지는 붉은 꽃잎과 흑백의 무대 위, 절제되면서도 가감 없이 열정을 쏟아내는 그 춤사위는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인생의 조각들이자 고통을 상징하는 핏빛 장미꽃잎들 속에서 되려 구르고 춤추며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은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강인함으로 다가왔다. 철저히 관리된 몸과 고난도의 동작을 우아하게 소화하는 그 안무의 전율은 과연 정유지 배우만큼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떠나버린 사랑, 실현되지 않은 상상 속의 자신까지 모두 끌어안고 네 명의 프리다가 인생을 노래하는 결말은 한여름의 태양보다 뜨거웠다. 비극으로 얼룩진 삶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아픔을 붓 삼아 인생을 예술로 남긴 프리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이제는 외치고 싶다. 어떤 힘든 일이 생기고 고통이 내게 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