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4일 이틀 동안 강원 평창 '라베르나 기도의 집'으로 피정을 다녀왔다. 잊지 못할 피정이었다. 그간의 휴가는 음주가무가 전부였다. 이번은 '어? 어? 어? 어!' 하다 나도 모르게 피장을 떠났다. 본의 아니게 오글거리는 옛 싸이월드 갬성 글이 나올 듯한데, 부끄러움이나마나 내가 나중에 다시 읽으려는 목적의 후기를 남기기로 했다.
그럼에도 피정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런 건 있었다. 실은 최근 내겐 좋은 일들이 많았다. 몇 가지 행운이 따랐을 땐 크게 기뻤는데, 이런 일들이 몇 번 더 반복되자 '왜 계속 좋은 일들이 생기지'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이게 '설쳐선 안 되겠어' 생각으로 이어지더니, 문득 홀로 시간을 보내며 심신을 재정비해보잔 결심이 생겼다.
그런데 피정 첫날밤, 막상 기도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들은 썩 좋지 못한 내용들이었다.
예컨대 '신께서 나를 바라보면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셨을까' 싶은 게 있었다. 요 근래 성당은 억지처럼 다녔고 가끔 기도할 때면, '이런저런 게 지금 문제니, 요것 좀 해달라' 식이 많았다.
난 이게 아직도 나쁜 기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하물며 인간도 주변에서 앓는 소리만 해대면 듣는 입장은 지치기 마련이거늘, 신이라도 이 부분만큼은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난 이곳에 감사함 일부를 탕감하려 온 게 아닐는지 싶었다.
라베르나 기도의 집.
이번 편 시작…
동시에 '감사함'이란 게 뭔지를 떠올리게 됐다. 내가 가진 모든 것, 겪은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해 보면 감사할 거야 단연 많다. 그러나 이를 '가슴깊이' 느낀다는 건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알지만 이를 진심을 다해 마음에 새긴단 게 만만찮다는 뜻이다.
요즘 유튜브나 주변을 보면 '감사하기'를 강조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단 느낌이다. 누구는 '감사일기'를 쓴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일기까진 아니어도, 일단 매사에 감사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감사란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감사하기는 실은 성당에서도 오래전부터 들어온 가르침이다. 이 신앙 자체가 감사함의 가치를 귀에 딱지가 눌러앉을 만큼 강조한다.
피정에서 '감사하기'를 묵상하다 3∼4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한 회사를 관두고 이직을 앞둔 때였다. 주변에 '회사를 관둔다'고 알렸더니, 모두가 "어디로 이직하냐"고 되물었다. 이직이 워낙 잦은 업계라 으레 이직을 예상한 듯했다. 실제로도 이직하는 게 맞았지만, 당시 나는 사실을 숨긴 채 "그냥 잠깐 휴식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새 회사 출근까지 한 달을 쉬기로 한 상황이었기에, 이 기간 동안 일과 관련해선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던 탓이다.
한 달 휴식에 돌입하며 3주 정도를 정신없이 놀았다. 전국을 돌며 그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4주 차를 맞이한 어느 날, 늦은 오전 잠에서 깨 휴대폰 확인 후 깜짝 놀랐다. 부재중 전화가 한 통도 없었고, 카톡도 단 하나도 온 게 없었다. 일할 때였다면 수통의 전화와 수십 여개 카톡이 와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선배에게서, 후배에게서, 업계 관계자에게서, 타사 동료들에게서 등등. 일할 땐 대단히 귀찮고 피곤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토록 깨끗한 휴대폰 기록을 확인하곤 왠지 모를 공허함이 몰려왔다.
오늘, 나를 아무도 안 찾네…
이때 내 뇌 회로는 이렇게 돌아갔다.
'일할 때 귀찮고 피곤하게 느껴졌던 연락들은 사실 감사한 거였다. 곧 새 회사에 출근하면 또 수많은 연락들이 올 테다. 그렇다면, 오늘을 계기로 앞으론 그 모든 연락들에 감사해야 한다. 가능할까?'
대답은 '아니요'였다. 오히려 또 힘들 것 같았다. 머리로는 분명 감사해야 한단 걸 알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모든 연락들에 일일이 감사함을 느낄 자신은 없었다.
이에 든 새로운 깨달음은 이거였다. '인생'이나 '삶' 같은 단어가 좀 거창하나 아무튼…
삶은 '원래' 힘든 거다.
원래 힘든 거다. 내겐 이 말이 늘 더 큰 위로가 되어줬다. 간혹 나쁜 일이 있을 때, 억지로 감사할 것을 찾고 느끼려 하기보단 '괜찮다, 원래 힘든 거다'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내려놓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됐다.
기도와 묵상 속에서 이런 단상을 이어가다 또 하나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 신앙은 '감사함'만큼이나 '최선을 다하라'도 수없이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늘 '감사함'에만 귀 기울여 왔을 뿐, '최선을 다하라'는 교리는 들은 체 만 체 해왔단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최선을 다하고, 그 외에는 신께 맡기고, 감사하라'인데. 원래 힘든 거니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데… 앞은 쏙 빼고 '매사에 감사해하면 신은 모든 것을 주신다'는 식으로 편하게 해석해 왔던 셈이다.
충북 진천군 배티성지.
물론 최선을 다하지 못했더라도, 감사하기는 그 자체로 중요하단다.
피정 첫날 늦은 밤, 바람을 쐬려 바깥에 나갔다. 고요함마저 잠든 듯한 숲 속엔 작은 불빛조차 보이질 않았다.
유일한 빛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도시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그 별들 사이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갔는데 불현듯 군대 시절이 생각났다.
하루는 행군 도중 일제히 걸어가는 우리 부대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다. 다들 똑같은 군복에, 소총, 군장을 차고 있어 어느 게 내 그림자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게 내 그림자지?
난 깊은 허무함을 느꼈다. 뭐랄까, 난 분명 스스로 독립되고 자주적인 개체인 줄 믿어왔는데, 실은 존재감 없는 n분의 1에 불과하다는 좌절감이었달까.
이런 상태에서 가장 멋져 보였던 게 훈련소 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였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이토록 뺑이를 치는데, 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행복한 여행을 오가는 사람들이겠지. 아니면, 저마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 출장을 다녀오는 멋진 사람들일까.'
난 그림자조차 알 수 없는 n분의 1인데… 여행객이라면 제 욕망을, 출장이라면 제 역할이 뚜렷한 이들일 테지. 동경심이 들었다.
9박 10일, 탔던 크루즈선.
피정의 집 숲 속에서 이 같은 옛 생각들을 하곤, 지금 현실을 보니 잊고 지냈던 감사함들이 생겨났다. 이젠 군복을 벗었고, 여행도 가봤고, 출장도 가봤고, 비행기도 타봤고, 심지어 크루즈선도 타봤다.
그 순간순간마다 '감사합니다' 생각은 했던 것 같은데, 그때도 가슴 깊이 하진 않았던 듯싶다. 그러다 이제야 진심으로 '감사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게 됐다.
자, 이제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어찌 살 텐가.
피정에서 당면한 난제였다. 완벽한 답은 찾지 못했다.
우선,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감성보단 이성 위주의 감사함이더라도…'잊지는 말자'.
또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어찌 살 텐가' 이 숙제를 계속 안고 가자.
이 밖에도 내가 현재 마주한 현실적인 사항들을 놓고 여러 사색과 기도를 이어갔다. 개인사라 줄줄이 열거할 순 없으나, 모처럼 나를 돌아보게 해 준 피정의 시간에 감사하다. 이건 진심인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