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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못정함 May 09. 2020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얻은 것

영화 '스마트폰 없는 10일 간의 생존기'를 보고

한 달여 전에 본 영화지만 이제야 쓴다. <지구봄 프로젝트>가 국내에 배급한 ‘스마트폰 없는 10일 간의 생존기’ 후기다.


불가피하게, 혹은 그저 좋아서, 평소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이들이 열흘 간 숲에 들어가 지내는 모습을 관찰한 작품이다. 물론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다.


실은 주제만 놓고 봤을  참신한 영화는 아니다.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듯, 그에 관한 생각거리를 건네는 작품으로 난 이해했다. 다만, 차별점이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인터넷도 이용할 수 없고, 나아가 다른 편의시설조차 상당수 사용 않고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작가, 인디 가수, SNS 인플루언서, 대학생으로 구성된 주인공들이 어떤 변화를 맞을지는 작품을 직접 봐야 한다. 약간의 힌트가 있다면 ‘성격마다 다르다’는 것. 사실 이게 영화의 포인트기도 하다. “나라면 어떨까” 떠올려 보는 다.


나 역시 어떨까 생각해 본다. 돌연 지난해 12월 초순이 기억난다. 대만 등지로 출장을 다녀온 때다. 환경재단과 함께 바다 위의 새로운 마을, 아니 움직이는 지구촌 ‘그린보트’에 탑승해 7박8일을 보냈다.

그린보트, 네오로맨티카호
썼던 방
와이파이만 안 썼을 뿐인데


취재를 목적으로 한 출장이었지만, 실은 일반 참여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각 프로그램과 시민들에 대한 관찰을 우선으로 하되, 나 역시 함께 했다. 술도 꽤 마셨더랬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났다. 기자실 등 출입처와 집회현장 등에선 안 나오는 여러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참 좋았던 그때였지만 크루즈 탑승 후 이틀 정도는 꽤 불편했다. 와이파이가 잘 안 돼서였다. 약간의 용량을 사긴 했는데 한국에 비해 너무 느렸다. 되레 사용할수록 속 터져서 스트레스였다. 고로 걍 비상용(?) 카톡 보낼 때나 쓰자는 심산으로 안 쓰고 말았다.


와이파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


당시 처음 본 사람끼리의 대화 주제 대부분을 와이파이가 차지했다. 간단한 통성명만 나눈 다음에는 온통 와이파이 얘기였다. “저기...혹시 와이파이 되나요? 저는 안 되네요?” 뭐 이런 식. 물론 나도 그랬다.


그때 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방을 썼는데, 이래저래 궁금한 게 많았다. 그쪽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이러저러한 취재는 어땠는지 등등 나누고픈 대화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선 친한 친구가 됐지만, 돌이켜 보니 그하고도 초반엔 와이파이 얘기가 적잖았다.  


이틀째 되던 날이 가장 불편했다. 첫날엔 그나마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프로그램 이해 등 적응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엔 딱히 할 게 없었다. 물론 취재랍시고 곳곳을 돌긴 했으나 잠깐이이었다. 일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면 금세 공허해졌다.


“와, 이제 이틀 밖에 안 됐네요. 이 상태로 일주일 더 보내야 되네요.” 룸메가 반복해 한 말이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이 나왔다. 혼자 방에 앉아 있는 시간, 눈앞 스마트폰 기기는 그저 무용지물 같아 보였다. “그나마 카메라라도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컸다.


육지에 도달한 때는 승선 사흘때 되던 날이었다. 혹 오해할까 짚고 넘어가는데, 그간 참여자들이 배에서 멍하니 있는 건 아니다. 낮엔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스타 40여명의 강의가 쉼 없고, 밤에는 파티가 열린다. 앞선 말은 ‘그 와중에도 와이파이 없는 건 불편하더라’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암튼 대만에 도착한 때, 본능적으로 마음이 확 트인단 느낌이랄까, 뭐 그랬다. 배를 벗어나게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로밍이 돼서 마음이 놓였던 게다. 하선  버스에 타자 사람들은 로밍신청에 바빴다. “이제 좀 편하네요”. 곳곳서 들려온 음성이다.  


우스운 건, 로밍은 했지만 정작 데이터를 많이 쓰지도 않았단 게다. 돌아보니 그냥 ‘심리적 안정’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스마트폰이 제대로 터지네” 같은 뭐 그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부모에게 자랑질(?)하긴 했지만, 그것 빼면 딱히 쓸 일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린보트 8층.
안 보이던 게 보였다,
         안 들리던 게 들렸다.         


사나흘 정도 지낸 뒤에야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나이스(?)하게 인정했다.


그러고나름의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스마트폰, 인터넷, 와이파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보니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안 보이던 게 보였고, 안 들리던 게 들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기자들은 취재하며 사람 이야기를 들을 때 기사로서의 가치부터 판단하는 경우가 다.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기자들은 “이게 (기사용)멘트가 될까”부터 떠올린다는 것이다. 좋은 멘트를 빨리 확보하면 마감을 앞당길 수 있다 보니….


스마트폰을 포기하니 사람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됐다. ‘귀 기울임’, ‘경청’의 진짜 뜻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었더라면, 잽싸게 누워 쉬려는 마음에 이야기 듣기보다 멘트 따기에 바빴을 다. 바다 풍경을 그토록 충분히 감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스마트폰을 포기함으로써 ‘내 생각’을 갈취 당하지 않게 됐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평소에 나 혹은 주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있긴 했나.


‘난 바쁘다’는 그간의 생각은 틀렸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진지하게 미래를 모색할, 그런 사색을 즐길 여유가 내겐 없다고 여겨 왔었지만 아니었다. 여유는 충분했다. 그 시간을 스마트폰, 인터넷과 보냈을 뿐이었다. 스마트폰에 여유를 갈취당해 온 셈이다.


그린보트에는 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같은 음악이 여러 번 반복됐다. 질렸지만 질리지 않았다. 그 음악에, 매번 다른 여러 소리가 어우러졌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파도 소리, 사람들 웃음소리, 심지어 크루즈가 거침없이 항해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엔진소리 등도. 스마트폰 화면 대신 주변 환경에 집중했기에 들린 예쁜 소리가 좋았다.


흔히 ‘감사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떨어져 보니 감사할 게 많았다. 


거센 파도에 배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크루즈 중심축 격인 8층에서 주로 쉬었는데, 그런 순간에도 ‘파도’, ‘꿀렁임’, ‘8층’, ‘중심’ 등 얘기꺼리가 많아 즐거웠다. 즐거움에 감사했다.


영화 ‘스마트폰 없는 10일 간의 생존기’를 보고, 그린보트를 떠올리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반성감이 든다.


코로나 핑계가 있긴 하나, 그린보트에서 내린 이래 사람보다 인터넷에 몰입한 시간이 길었다. “다른 무언가, 할 걸 찾아 봐야겠다”. 나와 주변을 샅샅이 둘러봐야겠다.     

대만 어디였는데 기억이 안 남...
대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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