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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와 밍기뉴 Jun 30. 2023

누군가의 댓가없는 위로

유독 외근, 출장이 많은 한 주를 보내고 있다. 결혼 1주년 여행을 다녀오며 충전해 둔 여유와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있음을 느끼는 금요일이다. 설상가상 어제 저녁에는 고단한 몸을 버스에 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트북까지 두고 내렸다. 물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잠들기 전에야 깨닫고는 밤 새 뒤척이며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운송 회사 운영시간만을 기다리며 이른 아침 전화를 걸었다. 50~6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의 푸근한 목소리. 뭔가 해결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인사도 건너뛰고 부리나케 본론부터 입 밖으로 꺼내버리는 나.  

"어제 저녁에 노트북을 분실했어요. 접수된 물건들이 있나요?"

"네, 노트북 2개 들어온 게 있네요"

"혹시, 천 재질의 검정색 노트북 가방에 들어있는 흰 노트북도 있을까요?"

"네, 있네요. 한 입 먹다 말은 빵도 있고. 바빴나보네! 버스 타고 종점으로 와서 찾아가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퇴근길에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24시간 있으니 언제든 와"


몸에 긴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회사 노트북인데 잃어버리면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자료들은 어떡하지? 불안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안도감을 느끼고 나니 약간의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빵 한 입 제대로 먹지 못하고 노트북 가방에 욱여넣었던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전화를 받은 아저씨는 우리 아빠 나이즈음 되었으려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노트북까지 잃어버린 30대 여자애가 이른 아침부터 불안한 목소리로 애타게 물건부터 찾았으니 측은하게 느꼈으리라 생각해본다.


오늘 아침에 받았던 첫 번 째 위로였다. 약간은 느릿한 목소리로 건네받은 언제든 천천히 와도 된다는 한 마디. 최소 환승 시간을 몇 분 단위로 계산하며, 혹시 늦지는 않을까, 현장에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가싯거리들을 머릿속으로 꽉 채운 채 종종걸음으로 목적지를 찾아 헤맸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걱정과 불안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쉽게 망각하곤 한다.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의 한 마디에 마음에 한 틈 공간이 생기는 아침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목적지로 향한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어폰을 잘 끼지 않는 타입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굳이 생각을 꺼내보자면 지독하게 단절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이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단절되어 있다. 간혹 휴대폰을 보지 않고, 이어폰을 끼지 않은 사람들을 구경하곤 하는데, 세상과 잠시 단절되어 있는 누군가를 구경하다가 민망한 여백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거나,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강대교를 지나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객실 내 스피커에서 짧은 노이즈 소리에 이어 지하철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듣고 있는 이들은 몇 명 없었다.


그날의 음성이 담겨있는 영상. 종종 이 글에 들러 들어야겠다.


" 미소, 칭찬, 사랑, 우정, 위로 등 오늘은 마음을 주고받으며 힘이 나는 날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필립 체스터필드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지요. '절망하지 마세요. 종종 자물쇠 열쇠 꾸러미에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는 말이 있듯이, 고객님들께서 계획하고 계신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남은 6월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에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댓가없이 받은 두 번째 위로였다. 이제는 조금씩 잊혀져가는 객실 방송이지만, 듣고 있을 몇 안되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써내려간 문장과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 나를 위한 위로에도 인색한데, 누군가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차창에 반사되어 보이는 승객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 중 몇 명은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옅은 미소. 그들에게도 분명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빠르게 혼자 달려가는 삶에 익숙해진 나에게 잠깐의 휴식같은 순간들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투박한 글을 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아주 잠시의 휴식같은 순간이 되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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