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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Nov 12. 2017

폴킴

다 떠나고 없는 아직 출발선

사람들은 저기 뛰어가는데 

아직 혼자 시작도 못 했어.

.

누가 내 맘 좀 알아줘

이런 내 맘 좀 알아줘

기댈 곳이 필요해


-폴킴.길



눈 앞에 파란 불이 켜지면 뛰어가는 사람들.


약속 없는 일요일, 하는 일은 딱 두개다. 

목욕탕 가기. 그리고 까페 가서 책 읽거나 다이어리 쓰고 사람 구경하기.


집에서 목욕탕까지 가는 길에 횡단보도를 4번은 건너야 한다.

저 앞에 마지막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졌다.

분명히 난 오늘 약속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그 뒤에 일정도 없고,

심지어 2시 30분 밖에 안된 시간인데.


뛰었다.


내 옆에 걷던 모두가 뛰었다. 

눈 앞에 파란불이 켜지면 뛰어갈 수 밖에 없는 걸까.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신호에 건너도 되는데,

굳이 모든 사람이 건너는 타이밍에 함께 가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버스를 타려고 뛰어갈 때도 같은 생각을 한다.늘.

다음 버스를 타도 될 텐데,

다음 신호에 건너도 될 텐데,

누가 우리를 세상의 속도에 발 맞추라고, 뛰어가게 만드는걸까.

눈 앞에 파란불이 켜지면 뛸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요즘 내 주변에 퇴사 소식과 결혼 소식이 넘쳐난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에서 '남미'라는 한 단어밖에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면서 꼭 이루고 싶은 단 한 가지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뤄낸다.


나는 겁이 많아서 얼마 되지도 않는 손에 쥔 것들을 꼭 쥐고

오도가도 못하는데,

너무 쉽게 떠나고, 이뤄낸다. 

내가 작아지는 날들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11월의 11일 이라는 날 들이 어이없게도 참 쉽게 지나갔다. 


어제 밤, 구글 맵으로 내가 가고싶던 모든 곳들을 차근차근 돌아다녔다. 

쿠바, 남미, 몰타 섬, 벤쿠버, 뉴질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써놓고 보니 70년 동안 못 갈 것도 없겠다 싶다. 

 

안코드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면 내가 나 자신을 제일 많이 사랑할까?"

내가 지금 당장 다 버리고 세계여행을 간다면,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교환학생 시절 쓰던 일기장을 열어봤다. 난 그 때 울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나는 지금 당장 다 버리고 세계여행을 떠난다면 매일 울며 보낼 게 뻔하다.

가족이 보고 싶어서, 너무 외로워서. 


그러면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일은 다음 신호에 건너도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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