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하면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느낌
6개월 만에 흰 화면을 켰다. 마지막 기록은 병원에서의 하루 하루 상태를 기록하고, 애닳는 마음을 편지로 남기던 날들이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도 전에 출근을 하게 되었고, 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며 나를 회복하는데 써야 하는 에너지를 회사 일에 쓰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니 양분이 부족해졌다. 할 수 있는 회복의 활동은 모두 했다. 매주 상담을 받고, 재활 운동을 하고, 크리스마스에 하와이를 다녀오고, 내 손에 쥔 취미를 하나 하나 시도 했다. 예전처럼 백패킹도 가보고, 페스티벌도 가보고, 러닝도 해보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그런 시간들 덕분에 지금 내가 이정도 일상을 살 수 있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예전의 마음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을 어여쁘게 바라보고, 내 삶을 소중히 대하고, 사소한 것에 웃음짓던 내가 너무 버석해진 느낌이었다.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나무도 분갈이를 오래 해주지 않아 흙이 마르고, 아무리 물을 줘도 버석함이 남아있다. 양분이 빠진 흙에 겨우 지탱하고 있는 느낌. 만족, 감사, 자족, 충분의 단어들이 어느샌가 멀게 느껴졌고, 여유를 잃은 마음에는 예민함이 자리잡아 행복한 모습이 분노의 감정이 될 때도 있었다.
사람은 죽지 않고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새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발현되곤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새해에 다시태어났다고 표현하는 그들의 언어와는 다른 맥락인 것 같다. 나는 죽지 않고도 죽었고, 다시 태어났지만 아직 이 삶에 정착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쓰는 글에 이런 비관적이고, 우울한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쩌겠나. 다시 태어난 나는 다시 글을 쓰는 사람이기로 다짐했고, 지금 당장 생각나는 글은 이런 문장일 뿐인걸.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는 건 ‘재건축’의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유효했던 방법들이 예전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새롭게 찾아나서면 된다.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있다. 하루 하루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나에게 보여주면 된다. 주말 아침 볕 좋은 까페 모호에 와서 양재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하얀 화면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적어내려간다. 양재꽃시장에 들러 수선화와 봄꽃을 사고, 하나로마트에 들러 점심 재료를 사간다. 밥을 든든히 먹고 최근에 시작한 버리기 프로젝트를 한다. 엄마에게 프리지아 한 다발을 가져다준다.
아침에 악뮤의 ‘the past year’ 영상을 봤다. 지난 1년 간 어떤 시간을 보내며 앨범을 제작했는지. 그 시간동안 찬혁과 수현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끌어주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합숙을 하고, 산티아고를 걷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우간다로 봉사활동을 간다. 내가 절망에 동굴에 있을 때 ‘네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길 바란다’며 끌어내주는 사람. 나에게도 오빠가 있지만 밍구기는 찬혁이가 아니다. 나에겐 찬혁이 없으니 스스로 찬혁이 되어줘야겠다. 지금이 자신들이 ‘꽃 피는 시기임’을 알고 있다며, 삶이 재밌다는 그 말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꽃이 피려면 음지에 있어선 안된다. 해를 쬐고, 바람을 쐬고, 물을 주어야겠지.
“어떤 겨울도 영원하지 않으며, 어떤 봄도 그 차례를 건너뛰지 않는다.”
회사 로그인 화면에 있던 문장을 보곤, 옆에 앉은 친구가 봄을 수동적으로 ‘오는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차례를 건너뛰지 않는’ 존재로 표현해서 좋다고 했다. 봄은 그냥 오는게 아니다. 자신의 차례를 건너뛰지 않고, 자신의 시기를 맞이한다. 봄이 오면 에너지 흐름이 바뀔 거라고 기대했다. 아직은 그대로인 것 같다. 감사와 행복의 마음이 피어나지 않는다. 아직은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래도 새로 찾아온 봄에, 새로 태어난 일상에, 재건축되는 삶에 분명 꽃이 피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햇살이 따스히 내리 쬐겠지.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에서 내가 쓴 마지막 글을 읽다가 까페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글은 현재의 나를 위로해준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이 이긴다. 지금의 나는 참으로 다행인 삶이다. 무탈한 일상을 그렇게 바래놓고, 무탈한 일상에 다시 시시해한다. 세계여행을 다니는 인플루언서, 음악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전국을 다니며 북토크를 하는 작가. 그들의 삶과 머리속에 회사 일만 가득한 요즘의 내 삶을 자꾸 비교한다. 다시 찾아온 삶이 이래도 되나 하는 욕심이 생긴걸까. 다시 찾아온 삶을 더 잘 살아야하는 거 아닌가, 이 기회를 이렇게 똑같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새로운 유형의 불안이다. 두번째 주어진 삶은 더 잘 살아야할 것 같은 감정. 그러면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 모든 걸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가? 아닐텐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무탈하고 시시한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일텐데.
끝이 해피엔딩이어야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소중히 담아온 나의 이브이야기가 그렇다. 언젠가 꺼낼 수 있는 날도 올까. 봄날의 햇살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언젠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선물 이야기를 풀어내면 빈 무언가가 채워지는 순간이 올까.
오늘의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썼다. 그냥 내가 다시 오늘 하루 충분하다며 두 발 뻗고 자는 날들이길 바라며, 새로운 삶에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우는 봄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아무리 다시 태어났다 해도, 이승윤의 노래 가사처럼 난 마지막 나니까.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 쉽게 포기하진 말아야지.
“서기가 영원해도 난 마지막 나야.
난 나라는 시대의 처음과 끝이야
난 나라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야
넌 나라는 마음의 유일한 무덤이야
넌 나라는 시계의 마지막 시침이야
난 나라는 우주의 빅뱅과 블랙홀이야
난 나라는 신화의 실체와 허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