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30년과 나의 10년
내일 모레 엄마가 은퇴한다. 한 회사를 30년 다니고, 마지막 출근날이다. 정년퇴직을 하기 까지 얼마나 성실한 시간이 쌓였을까. 직장인 10년 해보니까 알겠다. 그게 어떤 시간이었을지. 주변의 워킹맘 선배들을 보니 알겠다.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을지.
한 사람의 인생에서 3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올해부터는 출근일을 3일로 줄이며 점차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 엄마는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산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사우나를 가고 피부과를 갔다. 더 오래 자주 걸으러 나갔고, 나에게 음식을 더 자주 해줬다.
일주일 내내 출근을 안한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평일에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그러나 혼밥이 가장 어려운 우리 엄마에게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혼자 산에도 잘 가고, 영화도 잘 보고, 이것저것 잘 하지만 새로운 바운더리에서 안해본 것들을 하는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4월부터 바로 일주일에 4일씩 새로운 걸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ai에도 관심이 많고,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엄마라 걱정은 안된다.
엄마가 진짜 하고싶었던 것들을 해보라고 했다. 덩어리가 큰 질문이다. 진짜 원했던 것들을 한다는 건 뭘까.
꿈을 쫓으라는 말이 오히려 너무 무겁고 멀게 느껴진다면, 엄마에게 작은 단위의 액션플랜을 줘보는 건 어떨까.
도전에 익숙한 엄마니까 새로운 것들을 하다보면 또 금새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를 찾지 않을까.
-평일에 예술의전당 전시회 보기
-혼자 까페 가서 책 읽어보기
-바다로 훌쩍 드라이브 다녀오기
-딸 회사 근처 가서 점심 먹고 산책하고 오기
-해외 여행 계획 세워보기
-베이킹 배워보기
-영어 배우기
-새로운 운동 해보기
-평일의 서촌 가서 산책하고 맛있는 커피 마시기
-안해본 스타일 도전해보기
-매일의 스스로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보기
-일기 쓰기
-꽃시장 가서 스스로를 위한 꽃 사보기
-도서관에 가서 책등을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책 골라보기
-과천 국현미 가서 평일의 한적함 즐기기
리스트가 금방 채워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의 바운더리도 내 취향 안에서만 노는구나. 그리고 시간이 주어진 내가 하고 싶은건 꽤 단순하고, 일상적이고, 별 거 아니구나.
나의 은퇴는 어떤 모습일까, 언제일까, 어떤 감정일까. 요즘의 은퇴는 단순히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오래 몸담은 조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하게되는 일시정지의 개념이 아닐까. 나아가 ‘오래 몸담은 조직’이라는 개념도 점점 사라질테니 은퇴를 이렇게 크게 축하할 일도 없어질까. 어느새 자연스럽게 일의 방식과 형태가 변하게 되면 그건 정년퇴직과 다르게 축하받기 애매한 일일까. 대기업에 다니다보니 정년퇴직이라는 개념이 낯설지는 않지만, 마냥 멀게 느껴지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60세가 되도록 한 조직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의 가능성과 기회를 더 탐험하며, 새로운 방식을 경험해보고 싶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살아가며 내가 가진 재능과 지식, 경험을 가치있는 것을 실현시키는 데에 쓰는 형태의 일은 지속하면 좋겠지만 ‘한 조직에서의 정년퇴직’은 원하지 않는다. 정년퇴직을 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 지금의 조직이 너무 만족스럽거나, 인생의 목표였다거나, 미래의 계획이 세워져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역시나 사람들의 삶은 모두 다르다. 정년이 되어 정년퇴직을 하던, 파이어족이 되어 이른 은퇴를 하던 모두 축하받을 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성실하게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매일의 출근과 퇴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얼마나 많은지 아니까.
나의 은퇴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엄마의 정년퇴직은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30년 전의 엄마도 오늘의 엄마도 고생 많았다고